[자유성] 자사고를 향한 조급성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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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9   |  발행일 2019-08-19 제31면   |  수정 2019-08-19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를 안내하던 가이드는 마드리드시의 새로운 정책에 불만을 토로했다. 마드리드는 최근 시내의 핵심부에는 다른 지역 소속 차량의 진입을 제한하고 인도와 자전거길을 확장하였다. 이런 혁신적인 변모를 환영하는 시민들도 있으나 불만인 사람도 적지 않다. 차량진입 제한은 그 지역의 교통은 원활하게 했으나 상인들은 유동인구 감소로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차도의 축소를 전제로한 자전거 도로와 인도의 확장은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있다. 시장이 자전거협회장 출신이기 때문에 자전거 도로를 확장했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나무에 관심이 있다보니 그곳에서도 가로수에 눈길이 갔다. 가로수는 대부분 버즘나무와 굴피나무 비슷한 콩과의 교목(喬木)이었다. 황당한 일은 이들 가로수가 서 있는 식수대(植樹帶)였다. 마드리드 거리의 가로수는 흙공간이 전혀 없이 서 있었다. 살펴보니 당초에는 가로, 세로 120㎝의 식수대가 있었는데, 그것을 시멘트처럼 보이는 접착재료로 덮어버렸다. 적벽돌로 막은 곳도 있었다. 그곳에 쓰레기가 쌓이고, 보행자들의 실족사고도 일어나니 도시미화와 시민 안전을 위해 내린 조치로 여겨졌다. 이로 인해 가로수들은 몇 년 내로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됐다.

오랫동안 논란을 일으켜온 자율형 사립고 문제가 법정으로 넘어갔다. 재지정에서 탈락한 자사고 8곳이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전북도교육청은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에 대한 교육부의 부동의 처분 취소 소송을 청구했다. 교육감들의 내로남불 등 숱한 이슈를 만들어낸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김대중정부 때 만들어진 자사고는 남고, 이명박정부 때 자사고는 취소됐다는 것은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대목에서는 자사고의 존폐가 공정한 평가보다는 네편이냐 내편이냐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식수대는 시민들에게 다소 불편을 줄지언정 가로수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공간이다. 자사고 역시 많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에 틀림없다. 그것의 존폐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본질보다 이념이 더 큰 작용을 한 것 같아 답답하다. 국가의 백년대계 앞에서도 상대 정치 진영과의 이념적 차별성을 보여줘야만 하겠다는 조급증이 작동한 것 아닌가 싶어서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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