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냉장고를 부탁해요!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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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0   |  발행일 2019-08-20 제31면   |  수정 2020-09-08
[CEO 칼럼] 냉장고를 부탁해요!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지난 토요일 오전, 엑스코에서는 2019 학교협동조합 토크쇼가 열렸다. 행사장안에는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학교협동조합이야기’라는 현수막과 “씨뿌리는 농부처럼/ 자발적 고생 자발적 보람/ 그리고 친구들은 모르지만 보람있어요”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행사 내내 수시로 터지는 박수소리와 유쾌한 웃음소리가 분위기를 활짝 상기시켰다. 2019대구경북통합박람회 행사의 일환으로, 학교협동조합 활동경험을 격식없이 풀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이 자리에는 3개 고등학교에서 온 학생과 선생님들, 그리고 지역에서 오랜기간 활동해온 사회적경제기업가들이 함께 했다.

토크쇼에 초대된 학생들은 이미 1년이상 협동조합을 공부하거나 경험한 플레이어들이다. 현재는 대학생이 된 한 학생이야기다. 5명의 학생들이 힘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어 390여㎡(120평)에 농사를 지었다. 등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열심히 농사지어 팔아보려 하니 고작 20만원. 인건비, 자재비도 안 나와 옥수수잼을 만들어 팔기로 했는데 옥수수가 너무 튼튼해 가공과정이 너무도 힘들었단다. 잼을 만들면서 5명이 불옆에서 차례로 쓰러지고 누워있던 애를 억지로 부활시켜 겨우 성공, 로컬푸드협동조합에 팔았는데 그 역시 손해. 결국 적자를 이겨내지 못했지만, 우연히 응모한 청년협동조합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상금으로 적자를 메웠다고. 맛깔스러운 입담에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당시엔 얼마나 씁쓸했으랴. 5명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단다. 현재 농업전공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농업을 실제로 해보고, 돈버는 기회를 가져본 것, 협동의 경험, 그리고 시행착오가 자신을 키웠다고 말한다. 이 학생의 꿈은 협업농장주란다.

또 다른 학교 협동조합에서 하는 아침밥사업도 솔깃했다. 아침밥을 먹지 않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위해 아침밥을 챙겨주는 사업이다. 또래친구에게 밥 챙겨먹고 공부 잘 하라고 응원하는 마음씀씀이가 귀했다. 이 친구들은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챙겨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주변에서는 이러한 노력에 대해 “잘 굴러가는데 왜 바꾸려고 하느냐” “공부나 열심히 하지”라는 반응이란다. 제일 아쉬운 것은 함께하는 협동조합을 학생들이 같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꼽는 성과는 사회에 다가갈 수 있었고 책임감, 성취감을 배웠단다. 서로 공적으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첨삭이 이뤄져 좋았단다.

또 다른 협동조합은 매점사업을 준비하면서, 결코 만만한 사업이 아님을 절실히 느꼈단다. 이틀동안 정관에 매달리면서, ‘우리들만의 틀’을 만드는 경험이 새로웠다. 예산계획시, 쓸 곳은 많은데 돈 없는 학생조합원 조합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단다.

계획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한 학생은 3학년이 되면 활동이 어려우니 올 사업마무리를 잘해 협동조합 매점의 ‘창시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매점식 카페와 냉장고사업을 구상하는데, 냉장고가 없어 곤혹스럽단다. 사업내용인 즉, 냉장고를 기부받아 설치해 놓으면 학생들이 아침에 음료수나 차게 보관해야 하는 죽 등을 가져올 수 있고, 냉장고대여료를 소액으로 받아 수익금을 학생을 위해 쓰면 일석이조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 자리에 나온 이유도 냉장고사업 때문이라면서, 냉장고를 기부해 달라고 거듭 부탁하였다. 여기에 어머니뻘되는 사회적기업가가 조언을 주었다. 냉장고가 정 필요하면 학생들이 협동의 힘으로 출자금을 모아보면 어떻겠느냐는 안이었다. 협동은 “우리끼리 먼저 그렇게 하는거”라면서. 계획이 세워지면 자신도 흔쾌히 출자하겠노라고 제안하였다.

참석한 분들의 응원과 조언이 멋졌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짠하다”는 소감으로 문경여고 선생님이 말문을 열었다. 시간도 뺏기고 힘든 경험들이다. 그럼에도, 학교안의 작은 필요가 사회의 필요가 되는 과정을 배우고, 필요를 찾아내고 조직화하면서 해결해가는 과정을 배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덕담이었다.

이 아이들은, 숱한 부모들이 온 인생을 걸고 키워내는 아이들이다. 협동조합이 자기책임성을 갖고 자유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창의적 배움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오전, 빛나는 시간이었다. 어.쨌.든. 냉장고 기부할 분 있으면 알려주시길!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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