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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영롱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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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21

영롱발어
<전통음식전문가>
조선 숙종 때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영롱발어(玲瓏撥魚)란 음식이 등장한다. 메밀가루 반죽을 수저로 얇게 떠서 잘게 썬 소고기나 양고기와 같이 끓여 만드는 음식이라 기록되어 있다. 메밀수제비가 끓는 물에 둥둥 떠다니는 모양이 물고기가 헤엄 치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롱발어는 훨씬 이전 중국의 고서 ‘거가필용’에도 “메밀가루 1근을 된 풀같이 쑤어 살찐 소고기나 양고기 1근을 팥알 크기로 잘게 썰어 풀 속에 넣고 고루 젓는다. 수저로 팔팔 끓는 물에 떠넣으면 국수는 끓는 물에서 불어나고, 고기는 끓는 물에서 오그라들 것이다. 익으면 국수는 뜨고 고기는 가라앉아 아주 영롱하다. 소금, 후추, 장, 초 등을 쳐서 먹으면 맛이 좋다”고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수제비는 6세기경 중국고서 ‘제민요술’에도 ‘박탁’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한나라 말 유희가 지은 ‘석명’에도 밀가루로 만든 ‘탕병’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문헌을 통해서 보면 수제비는 1800여 년 전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전래된 음식이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음식으로 자리잡았다. 1924년 ‘조선무쌍 신식요리제법’에도 끓는 국물에 메밀반죽을 뜯어 넣고 끓이면 익은 후에 수제비가 둥둥 뜬 모양이 마치 구름에 떠있는 형상이라 하여 운두병(雲頭餠)으로 불렀다고 한다. 조선 중기부터는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먹는다는 의미로 ‘수접’이라고도 불렀다. 조선 초 어의 전순의가 1459년 편찬한 ‘산가요록’에도 수제비는 ‘나화’ 혹은 ‘수라화’ 등으로 기록되어 임금님의 수라상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수제비는 별미로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지만 근대시대 이전만 해도 밀 생산량이 적어 수제비는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조선요리학’의 저자 홍영표는 1938년 신문에 기고하기를 “수제비는 가난한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한여름의 복날처럼 특별한 날에 먹는 별식”으로 그려져 있다.

사실 수제비는 역사가 아주 오래된 음식이다. 옛날에는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부잣집이나 양반들의 잔칫날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 상에 올랐던 고급음식이었다. 근대초기만 해도 양반집에서는 별식으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고, 밀가루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수제비를 끓여 잔칫상에 올렸다고 한다. 그 후에 밀이 귀한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 흔한 감자, 강냉이, 도토리 등으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입맛이 없을 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별미지만 수제비는 중장년층에게는 할머니, 어머니의 손맛과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노년층에게는 6·25 전쟁 이후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 끼니를 때우려고 먹었던 가슴 아픈 음식이었다. 6·25전쟁 이후 많은 밀가루가 구호물자로 유입되면서 수제비는 서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으로 애용되어 왔다. 밀은 음양론으로 더위를 식혀 주는 음식이다. <전통음식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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