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안목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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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1   |  발행일 2019-08-21 제31면   |  수정 2019-08-21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작가가 최근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 막말에 가까운 비판을 했다. 소녀상이 더러우며 현대미술에 요구되는 재미, 아름다움, 지적 자극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맞을까. 김운성, 김서경 부부작가가 만든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를 상징하는 조각이다. 2011년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로 확산됐다.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군에 끌려갔던 14~16세때를 재현했다.

대구에도 곳곳에 소녀상이 있는데 소녀상을 볼 때마다 에드가 드가(1834~1917)의 ‘14세의 어린 무용수’ 조각이 떠오른다. 두 작품은 닮은 구석이 많다. 특히 가냘픈 어린 소녀의 응시하는 눈빛이 오버랩된다. 작품 내용도 일치점이 있다. 발레리나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발레계의 씁쓸한 현실을 담고 있다. 부유층 남성들이 어린 발레리나를 후원하면서 요즘 말하는 원조교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회풍조를 담았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앞서가는 파격적인 구성이 조각에서의 새로운 모더니즘적 시도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지만 지나친 자연주의적 표현에 불편함을 표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흔히 작품은 두번 태어난다고 한다. 첫 탄생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에 의해서, 두번째는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에 의해서이다. 여기에서 안목이 크게 작용한다. 안목(眼目)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이다. 미술에선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예술적 형식을 갖춘 작품에서는 안목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으나 여기서 벗어나 앞서가는 파격적인 작품에서는 그 차이가 확연하다. 미학자 유홍준이 “근대미술사에서 쿠르베의 리얼리즘, 마네의 인상파, 반 고흐가 푸대접을 받은 것은 아직 세상의 안목이 작가의 뜻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란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해외에서만 그러했을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예술로 찬탄을 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의 개성적인 서체도 당대에는 법도에서 벗어난 괴기스러운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예술작품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울림을 느끼는 사람만이 감동할 수 있고 이것을 찾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그것이 안목이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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