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亡徵敗兆 (망징패조)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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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2   |  발행일 2019-08-22 제31면   |  수정 2019-08-22

“하이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이 나라에 망조(亡兆)가 들었나 보다.” 이전에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다. 마을 회관이나 사랑방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곧잘 이런 말을 하시곤 했다. 이 망조는 줄임말로, 본디말은 망징패조(亡徵敗兆)다. 국가나 단체가 망하거나 결딴날 징조라는 뜻이다. 흔히 부모 자식 간 또는 형제 자매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천륜(天倫)이나 전통적 미풍양속이 파괴되는 사건이 생겼을 때 인용됐다. 그런데 2019년 8월 현재 이 달갑잖은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사실 작금의 대한민국과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허망하다. 세태가 이전과는 너무나 달라져 격세지감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만 추구하겠다는 이른바 ‘소확행’ 선호 풍조가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불확실한 미래에 자녀 덕을 기대하기보다는 현재의 확실한 나만의 행복한 시간을 즐기겠다는 경향이다. 자신의 행복 추구권리를 찾아 누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는 혼인을 안 하니 부모들은 기가 막힌다. 제발 시집 장가 좀 가라고 닦달하거나 강요해도 소용이 없다. 시집 장가를 가서도 애를 갖지 않는 세태는 더 난감하다. 저출산은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젊은이는 없고 늙은이들로 가득한 기형사회가 될 우려가 크다. 조만간 현실화될 조짐이다. 늘그막에 손자손녀를 둥개둥개 안아보는 노년의 즐거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 혼자만 편하면 된다는 개인주의가 판을 친다. 노인세대에 대한 존경이나 예의도 없어진 지 오래됐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를 보기 어렵다. 불의는 못본 체 해도 불이익은 안 당한다.

한국을 이끈다는 장관 등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면 실제로 망조가 든 것 같다. 국익이나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정치인들도 국민 화합·통합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오로지 당리당략, 표심 잡기에 몰입하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 욕심과 정치적 포퓰리즘에 빠져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 특히 여당의 일부 인사들은 포용·통합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국민 편가르기·갈라치기를 해대고 있다. 저잣거리의 장삼이사만도 못한 행태다. 망조가 심해지기 전에 모두 각성해야 한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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