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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의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 고판화로 되살아나고 판각으로 떠오른 선현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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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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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책판박물관에서 소장중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복원 인출본.
해설중인 고판화박물관 한선학 관장.
판각을 마무리한 경판을 들어 보여주는 안준영 이산책판박물관장.
일본 교토 지온인(知恩院)이 소장한 ‘오백나한도’를 모본으로 만든 일본 목판화의 인출본.
안준영 관장이 복원한 ‘어제비장전’(대구 부인사 소장) 부분.
박물관 한 편에 쌓여있는 수 천점의 고판화 목판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는 말에서 ‘역사’라는 관념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또 그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역사는 이어지며, 갈수록 그 이름값을 더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란 기록되고, 보존되고, 재현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역사적 사명’이라는 말에는 누구나 숙연해진다. 모든 인연이 그 속에 있다는 말이므로, 가늠키 어려운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오늘은 더위를 뚫고 치악산과 덕유산 끝자락으로 내달린 덕에 운 좋게 만난 두 박물관이 스스로 품은 역사로 맡은 바 제 몫을 다하고 있음을 전하려 한다.

원주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국내유일 동서양 고판화 2500여점 소장
문화재급 티베트‘나한도’ 퇴계‘성학십도’
명주사 주지이자 관장 한선학 스님 열정
함께 차 마시며 판화에 얽힌 이야기 들려줘


함양 덕유산‘이산책판박물관’

안준영 관장이 복원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고서표지 장식 능화판,민화·제작도구 전시
책 인출 판목 등 전통적 인쇄 다양한 경험
고려초조대장경‘어제비장전’복원품 자랑



◆진리는 역사인가, 예술인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치악산을 바라보며 달리다 꺾어져 좁은 산길로 접어들어 올라서면 닿는 곳, 해발 600m 높이의 아늑한 터에 명주사가 있다. 저 멀리 감악산을 마주하고 뒤로 치악산 매봉을 두른 절집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벌써 마음자리가 편안하다. 1998년 창건이니 불과 20여년 남짓, 그래서일까. 대웅전과 경내 석탑, 그리고 불상들이 서로 친구같이 잘 어우러진 이 절집은 전통의 굴레를 훌훌 털어버린 듯 너와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다. 게다가 동서양 고판화 수천 점을 소장한 우리나라 유일의 고판화박물관이다.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친숙한 분위기의 로고는 유명 판화가 이철수의 솜씨다.

불교미술을 전공한 것도 모자라 최근 한양대에서 박물관교육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명주사 주지이자 고판화박물관 관장인 한선학(韓禪學) 스님의 열정이 사찰과 박물관 구석구석을 달구고 있다. 전 세계를 다니며 부처님 말씀이 어디 버려져 있지는 않은지, 땔감이나 장신구함 따위로 변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살피다 보니 차츰 눈이 밝아져 이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진리를 전한다는 사문(沙門)의 신념을 실천하는 현장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한국은 물론 인도·일본·중국·몽골·티베트·네팔의 고판화와 목판인쇄 서적, 판화까지 2천500여 점 소장품은 한국 최대 판화박물관을 지탱하는 힘이다.

연간 1만여명의 관람객들은 그저 보는 데서 나아가 판화감상, 판화 만들기 체험에다 스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판화에 얽힌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고판화를 모으게 된 사연을 묻는 말에 스님은 “유물도 생명이 있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게 되어 있다. 집착이 없다면 버림의 의미도 모르는 것”이라며 박물관을 통해 “집착과 희열을 나눔과 보시로 바꾸기 위해서”라고 답을 이었다.

박물관에는 고려시대 때 제작된 화엄경 변상도(變相圖) 목판, 갖가지 문양을 찍어내던 능화판(菱花板), 편지지에 난초, 파초, 수선화 무늬를 찍던 시전지(詩箋紙)판, 새해 아침에 붙이던 호작도(虎鵲圖) 목판, 목판 삽화가 실린 서적 등 다양한 유물들이 중국·일본·티베트·몽골의 고판화와 함께 전시되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정교함이 동판화의 세밀함을 능가하는 티베트의 ‘나한도’, 퇴계 선생의 ‘성학십도’, 목판각과 왕실잔치기록인 ‘진찬의궤(進饌儀軌)’, 목판각 등은 박물관이 손꼽는 문화재급 소장품이다. 일본 교토 지온인(知恩院) 소장의 고려 불화 ‘오백나한도’를 모본으로 19세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목판화 초판 인출본 또한 오백나한과 산수가 함께 표현된 보기 드문 예이기에 놓쳐서는 안 된다.

스님은 “유물이 지닌 수많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전통에 뿌리가 닿은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어 박물관과 친해진다”며 방문객들에게 망가진 유물 하나를 보여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인 조선시대의 ‘오륜행실도’ 목판을 일제강점기에 화로로 만들어 쓰느라 훼손시켜 구두닦이 통처럼 되어 있었다. 참다운 인생을 살며 태평성대를 염원했던 정조 임금의 간절한 뜻이 이렇게도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박물관을 벗하는 것은 종교에 다가가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겠다. 신해행증(信解行證)의 경계를 열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문턱마다 들려오는 질문들을 기억한다. 믿음이 열쇠인가, 지혜가 열쇠인가. 고판화박물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권한다.

안준영 관장이 복원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고서표지 장식 능화판,민화·제작도구 전시
책 인출 판목 등 전통적 인쇄 다양한 경험
고려초조대장경‘어제비장전’복원품 자랑

◆인연을 잇는 나무와 칼의 명상처

상상 이상의 절경을 품은 무주의 덕유산이 이곳까지 뻗어있는 줄 몰랐다. 한때 넘치는 젊은 패기를 주체 못해 떠났던 한 장인이 남덕유산 자락 함양 땅으로 20년 만에 이산책판박물관을 짓고 돌아왔다. 한국 기록문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책판(冊版)을 연구하고 복원하기 위해 2014년 10월에 개관한 국내 유일의 책판 박물관인 이곳은 이산(以山) 안준영 관장이 직접 복원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고려대장경, 훈민정음 언해본,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인 용비어천가 등 문화재급 책판 1천여 점과 함께 고서 표지를 장식하는 능화판, 고판화, 고서(古書), 민화, 시전지, 제작 도구 등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목판에 글자를 새겨 책을 인출하기 위해 만든 판목(板木)인 책판에는 경전을 찍기 위한 경판(經板), 사서삼경을 찍기 위한 경서판(經書板), 다라니를 찍기 위한 다라니판(陀羅尼板) 등이 있고 그 외에도 글씨를 찍기 위한 판목인 서판(書板)과 그림을 찍기 위한 판목인 도판(圖板)이 있다. 책판 외에도 수장고와 복원실, 교육실, 전시실 등이 잘 갖춰져 책판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관람을 넘어 전통 인쇄문화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얻어가는 곳이다.

“그림을 새기는 사람은 목판화가, 글씨를 새기는 사람은 목판각가로 나누어서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목판서화가입니다.”

안 관장은 자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뒤집어진 허공을 파내야 온전한 글씨가 드러나 보이는 판각의 이치. 감춰진 획들을 심안으로 찾아내는 돋을새김을 하고, 돌아누운 글씨들이 먹물을 머금고 마침내 종이 위에서 반듯하게 눈뜨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수고로움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인본(印本)으로 전해오는 것을 다시금 피가 돌게 만드는 작업은 새로운 창작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까지. 그는 “역사를 되살리고, 조상의 지혜를 잇는 뜻깊은 작업”이라며 치목에다 판각, 마구리쇠, 먹물제조, 종이, 인경에 이르는 일련의 공정을 ‘도 닦듯’ 해내고 있었다.

그냥 목판에 칼을 갖다 댄다고 글씨나 그림이 되는 건 아니다. 각판의 특징과 판식을 분석하면서 칼을 밀어내는 추각법, 칼을 당기는 인각법, 산맥의 준봉을 이어가듯 깊고 얕게 파내는 타각법, 그 어느 방법이든 결코 책판에 담겨질 진리를 훼손하지 않는다. 오전 3~4시쯤 일어나 향을 사르며 시작하는 수행에 다름없는 그의 일과는 “글자를 새기는 게 아니라, 부처님 말씀을 한 자(字) 얻는 것”이라며 이름 모를 당시의 각수와 대화하듯 환희심을 낸다.

그가 가장 자부심을 갖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려초조대장경의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 변상도’ 복원품이다. 초조대장경 조성 천년을 기념해 조성된 이 어제비장전 복원품은 각수의 기운이 절정에 오른 듯 그 유려함을 어디에도 비길 데 없어 그의 마음에 꼭 들게 복원이 되었다. 지금은 1232년 몽골군에 의해 초조대장경이 소실된 사찰인 대구 팔공산 부인사 제자리에 봉안되었다.

이산책판박물관은 책판 복원에 몰두하고 있는 안 관장과 그의 뜻을 함께하며 도제로서 무량한 공덕을 쌓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혼이 담긴 곳이다. 전통문화의 ‘복원’을 바탕으로 재생산되는 ‘창작’은 전통문화를 살아 뛰게 하는 힘이다. 그 절정의 생각들이 큰 힘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누군가 민족의 문화는 계몽과 신화 사이에 걸려있다고 했다. 계몽과 신화 사이의 긴장을 꿰뚫어보는 역사란 기록으로 존재하는 법이다. 중국 법난의 시대에 천주(泉州)에서 경전이 결집되고, 몽골의 병화가 국토를 유린하던 고려시대에 남해에서 재조대장경이 탄생했듯이, 환란의 시대는 어떤 각수의 팔뚝에도 힘을 솟게 하는 것 아닐까.

대구교육박물관장, 사진=김선국 사진가

잃어버린 반쪽 찾은 듯한 치악과 덕유…작은 칼질로 품은 先人의 뜻

◆치악에서 덕유까지 내달려 얻어낸 힘

두 박물관을 겹쳐 생각하며 나는 대장경을 증의(證義)했다 여겨지는 일연선사가 “내 다시 오면 그대들과 더불어 한바탕 멋지게 놀아 보리라”라고 했던 유언을 문득 떠올렸다. 그 멋진 놀이판에서 고판화박물관과 이산책판박물관은 한몸이어야 맞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듯 사람들은 치악과 덕유를 다 순례해야 마땅하다. 풀 한 포기 뽑힌 자리에도 무량겁의 화장세계(華藏世界)가 담겨 있다 했는데, 먹물 때를 더하면서 더 밝은 얼굴들을 찾아내고 작은 칼질로도 선인의 품은 뜻을 벼르는 이곳이야말로 서로 통하는 놀이판이 아니고 무엇일까.

고판화로 되살아나고 판각으로 떠오른 선현들의 찬란한 말씀들이 성큼 다가오는 듯, 오늘 두 박물관이 귀의하는 마음으로 맞아 주었으니 나 세상 사는 힘을 다시 얻었다면 믿으실텐가. 강원도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www.gopanhwa.com/museum, 경남 함양 이산책판박물관 esanmuseum5694.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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