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마음 톡톡] 학교교육 예찬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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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3   |  발행일 2019-08-23 제39면   |  수정 2020-09-08
개구쟁이 손자가 말 잘 듣게 만드는 학교
美에 사는 아들네 손자 잠시 맡아 돌봐
아직 한글은 익숙지 않은 아홉살 아이
한달간 인근 初校로 편입해 공부 기회
부모와 조부모 말까지 잘 듣지 않지만
선생님 당부 잘 따르고 친구들과 추억
다음에도 또 오겠다고 벼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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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초등 3학년 학생들이 미국에 살면서 할아버지댁에 잠시 들러 한달간 수업을 함께한 친구와 방학식을 마친 뒤 즐거워하고 있다. <수성초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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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복 더위에 오는 손님은 범보다 무섭다고 했는데, 어린아이 손님은 더 감당하기 힘들었다. 미국에서 온 아홉 살, 다섯 살 두 개구쟁이 손자 녀석이 온 집 안을 뛰어다녀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아들네 식구가 더위에 복작거리다 떠나고 나니 두 달이 훌쩍 지나 8월이 왔다.

사소한 일이 있어서 아이들을 잠시 내가 맡아 보게 되었다. 큰 손자는 다행히 집 앞 초등학교에서 한 달 공부할 수 있었다. 3학년에 편입되어 첫날부터 기분 좋게 학교 수업을 듣고 왔다. 말은 잘하지만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을 못해 걱정되었지만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아침이면 학교 간다며 신나서 뛰어갔다. 늦잠을 잔 날은 지각하면 안 된다며 밥도 거르고 달려가고, 일기를 한글로 못써서 영어로 써 가곤 했다. 담임선생님은 읽기 힘든 아이의 글을 읽고 코멘트를 해 주었다.

알림장을 보면 글을 쓴 것이 아니고 글을 그려 왔다. 그래도 담임선생님이 칠판에 쓴 것을 다 그려왔다. 학교생활 어땠냐고 물으니 “좋아요. 재미있어요”라고 한다. 2~3일 만에 친구도 사귀었다고 자랑이다. 아이들은 서로 금방 친해지는가 보다. 반 친구들은 호기심에 이것저것 많이 물어봐서 대답하느라 즐겁기도 하고 어려웠단다. 친구 이름을 물으니 모른단다. 담임선생님이 반 친구들 이름과 사진이 적힌 유인물을 줘 반 친구 이름을 밤늦게까지 낑낑대며 외우고 있었다.

작은 손자도 유치원에 한 달 다녔다. 말이 더딘 녀석이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말을 잘 못하니 소통이 안 되어 울거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기우였다. 너무나 적응을 잘했다. 유치원에 한 달을 다닌 작은 손자는 말문이 터져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조잘거렸다. 그동안 말하고 싶어서 어찌 참았을까 싶을 정도다. 그동안 말을 못했으니 저도 얼마나 답답했을까. 의사표현이 안 되니 투정에 생떼만 늘어 다루기 힘든 아이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아이는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했던가 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태어나 말을 하는 것이 태어날 때 받는 고통보다 몇 배 더 크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이가 말을 배워 말을 한다는 것은 이미 언어의 상징계 속으로 들어 온 것이다.

개구쟁이 두 녀석을 학교에 보내고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분주하고 바쁘던지 남편과 서로 시간이 되는 대로 분담을 했다. 큰 손자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방학을 하면서 작은 손자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도 끝이 났다. 나는 이번에 학교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집에서 “이렇게 해야 해” 하고 몇 번을 말해도 듣지 않던 손자들이 학교 한 번 갔다 오더니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아닌가. 작은 손자도 선생님이 “사탕 먹지 말라”고 했다며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닌가. 평소에는 막무가내더니, 선생님 말씀 한마디에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무서운 사람이 없다. 아버지 어머니는 늘 내 편인 친구 같은 존재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이들의 밥이다. 그런데 선생님을 두려워하고 말을 잘 들으니 정말 다행이다. 이런 상황도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의 첫 교육에 유치원 선생님과 학교 선생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 여름 손자들은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아주 보람 있는 생활을 하고 돌아갔다. 친구들이 다음 방학에도 오라고 했다며 또 친구들을 만나러 오겠단다. 작은 손자는 유치원에 다니는 동안 여자친구를 사귀어 손을 꼭 잡고 다녔다고 유치원 선생님이 말해 주었다. 나는 “정말 잘 되었구나” 하고 좋아했지만, 제 어미는 아무 말이 없다. 엄마가 없으면 “엄마 보고 싶어” 하며 우는 녀석이니,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아이에게 엄마인 자기가 전부라고 여겼는데, 아이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게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나는 “얘, 정상적으로 잘 크고 있다는 거야”라고 하며 안심시켜 주었다.

큰 손자가 한 달 수업을 끝내고 방학을 하고 오기에 “오늘 어땠어”라고 물으니 2학기 교재를 한아름 내놓는다. “나 이 책 다 가지고 갈 거예요”라고 하는 것이다. “할머니 근데 왜 친구들이 만날 때도 ‘안녕’ 하고, 헤어질 때도 ‘안녕’ 해요. 왜 ‘안녕, 안녕’ 해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만날 때 인사와 헤어질 때 인사말이 다르다.

“동휘야, 너는 그럼 뭐라고 해”라고 물으니 “만날 때는 ‘하이’ 하고요. 헤어질 때는 ‘바이’ 해요”라고 한다. 아이는 미국식 인사말에 익숙하니 아침에도 “안녕”, 수업 끝나고 오면서도 친구들이 “안녕” 하니 이상했나 보다. “만날 때 안녕은 ‘하이’ 하고 같은 거야. 헤어질 때 안녕은 ‘바이’ 하고 같은 것”이라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 헤어질 때 손을 흔들어요. 이렇게” 하며 이해했다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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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시인·문학평론가

나도 우리말이지만 별 생각 없이 사용했는데 손자의 한 마디로 인해 안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안녕은 친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이다. 만났을 때 안녕은 말끝을 내려서 발음하고 헤어질 때 안녕은 말끝을 올려서 발음해야 한다.

손자들이 와 있는 동안 몸이 지쳐 책을 펼쳐볼 여력도 글 쓸 시간도 없었지만 나름대로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행히 손자가 우리나라 학교생활을 체험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흔쾌히 아이를 받아주신 대구 수성초등 교장 선생님과 곽진영 담임선생님의 자상한 지도에 이 지면을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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