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일본 수출규제 대응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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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7   |  발행일 2019-08-27 제31면   |  수정 2020-09-08
[CEO 칼럼] 일본 수출규제 대응
권업 대구테크노파크 원장

한·일 관계 악화로 한국 산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일본이 한국 수출을 규제한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를 두 차례 허가하면서 양국 갈등이 조정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치 못한 GSOMIA(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28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고 비전략물자에 대해서도 ‘캐치올 규제’를 시행한다. 이것에 더해 일본이 규제대상 품목을 늘리거나 규제 강도를 강화하는 추가 보복 조치를 우리 기업들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기계·부품·소재를 수입하여 주로 자동차부품, 섬유류 등 중간재를 생산하는 대구지역 기업들의 고충은 특히 깊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대구지역의 3대 무역국으로, 2018년 기준 수입의 14%, 수출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기계, 화학, 철강금속 등 제조업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854개사가 6억5천73만달러를 수입하고 있는데, 이는 대일 총수입액의 97%를 차지한다. 지역기업의 대일 수입 현황 및 피해 예상품목 조사에 의하면, 기계·부품·소재 분야 대일 수입액 상위 25개 품목(HSK 10단위 기준) 중 대일 수입의존도가 50% 이상인 품목은 6개이고 25개 품목 중 21개 품목이 일본 전략물자에 해당한다. 이는 수출선이 ICP(Internal Compliance Program)기업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품목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일본 경제산업성의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수출불가 판정이나 허가심의 기간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경우 오랜 기간 일본으로부터 부품이나 소재를 수입하여 제품을 생산하던 기업들의 입장을 상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부의 대응계획을 분석해보면 대체로 다음 5가지로 요약된다. 주요 품목 물량확보 지원, 대체 수입처 확보 지원, 수입품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 지원, 대체품 인허가 기간 단축 및 비용지원, 피해기업에 대한 예산·세제·금융 지원이 현재까지 제시된 대응책이다. 이를 시행하기 위해 2천732억원의 국회 추경이 추진되고 있고 지역에서도 중소벤처진흥공단과 대구신용보증재단 등을 통한 자금지원과 함께 각종 기업지원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피해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대응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첫째, 수입선 다변화를 서둘러 대체수입품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세계 최고 품질의 일본산 부품·소재를 사용하던 생산 공정에 그대로 투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 반도체용 고순도 세라믹소재들인 알루미나와 이트리아를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인도네시아산을 들여왔을 때 품질면에서 당장 사용하기에 애로가 많을뿐더러 이를 사용하여 생산한 제품을 대기업에 납품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는 말이다. 품질 업그레이드와 함께 인증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소요시간의 부담이다. 그나마 발 빠르게 확보한 일본산 재고가 6개월 뒤 바닥나면 생산을 당장 중단할 수도 없지 않은가.

둘째, 수입품 국산화를 위해 총력전을 벌인다 해도 연구·개발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시간, 국산화 이후 신뢰성 미확보에 의한 판로확보의 어려움, 국제 분업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일본산 대비 경쟁력 수준이란 장벽을 만날 수밖에 없다. 일본 화낙 CNC(컴퓨터 수치제어 공작기계)는 90% 국내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이로 인해 고객들이 이 브랜드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바꾸기 쉽지 않다. 또한 이미 정평이 나있는 화낙 제품의 기술력과 품질로 몇 개월 내에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요기업에 따라서는 국산개발에 5년 이상 소요된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 규모가 큰 업체라고 하더라도 당장 일본산에 의존한 제품 생태계를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정부, 지자체, 수요 대기업, 관련 기업, 정부 출연연구소, 기업지원기관 간 예산뿐만 아니라 제반 문제에 대한 긴밀한 상생협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국가적 난제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권업 대구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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