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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역사 청송 문화재 여행 .8] 찬경루와 운봉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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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관영기자
  •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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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命으로 세운 찬경루, 집안 역적으로 몰린 소헌왕후의 슬픔이…

청송군 청송읍 소헌공원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찬경루. 세종은 소헌왕후를 위해 직접 청송군수 하담에게 찬경루와 운봉관을 세우게 했다. 보통 객사에 부속된 누각과 달리 찬경루는 용전천이 넘쳐 청송심씨 시조묘를 찾을 수 없을 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한 재각이었다.
청송읍 한가운데에 ‘소헌공원’이 있다. 소헌은 조선의 제4대 왕 세종의 비 청송심씨 소헌왕후(昭憲王后)를 일컫는다. 뒤로는 방광산(放光山)이 단단하게 드리웠고 앞으로는 너른 모래사장을 거느린 용전천(龍纏川)이 유유하다. 천의 맞은편에는 현비암(賢妃岩)이라 불리는 용머리 형상의 기암절벽이 솟구쳤다. 어진 왕비 ‘현비’ 또한 소헌왕후를 기리는 이름이다. 현비암의 등 뒤에는 보광산(普光山)이 우뚝한데 그곳에는 왕후의 시조묘가 굳건하다. 소헌공원에는 세종 때인 1428년에 처음 세웠다는 객사와 누각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을 지으라 명한 것은 세종이었다 전한다.

찬경루 뒤쪽에 위치한 운봉관. 일제에 의해 정당과 서익사가 철거되는 수난을 겪은 뒤 2008년 고증을 거쳐 복원됐다. 객사인 운봉관은 당시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 사신들의 숙소로 활용됐다.
#1. 왕의 命으로

청송심씨 심온(沈溫)의 딸이 태종의 아들 충녕(忠寧)과 가례를 올린 것은 1408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418년 왕세자에 책봉된 충녕대군은 같은 해 태종으로부터 왕위를 양위 받아 즉위하고 심온의 딸은 왕비가 되었으니 바로 세종과 소헌왕후다.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났으나 모든 것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주상이 서른이 될 때까지 국방과 나라의 중요한 문제는 내가 직접 결정할 것이다.”


정면 4칸·측면 4칸 팔작지붕 찬경루
홍수때 심씨 시조 제사 장소로 쓰여
왕비 위로하려는 세종 마음 담긴 듯
운봉관은 조정 파견 관리·사신 숙소
일제강점기 정당·서익사 철거 수난


세종의 즉위와 함께 소헌왕후의 고향 청송은 현(縣)에서 군(郡)으로 승격되었고 심온은 영의정에 올랐다. 영의정에 임명된 심온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떠나게 된다. 그가 떠나는 날, 거리는 이 새로운 권력자에게 줄을 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수레와 말이 도성을 뒤덮었다. 이 소문을 들은 태종은 다시 외척이 득세할 것을 염려했다. 이즈음 병조참판 강상인이 군사문제를 태종이 아닌 세종에게 직접 보고하는 일이 발생한다. 태종은 ‘태종과 세종을 이간시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강상인을 잡아들인다. 그리고 이 일에 심온과 그의 동생 심정(沈)을 연루시키고 심온을 주모자로 만들었다. 그해 명나라에서 돌아온 심온은 영문도 모른 채 곧바로 체포된다. 심온은 사약을 받고 처형되었으며 재산은 몰수되었고 아내와 딸은 관비가 되었다. 왕후의 지위 역시 위태로웠으나 세종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태종은 소헌왕후마저 해하지는 않았다. 비(妃)로서의 내조의 공이 크고, 많은 자녀를 낳아 왕실을 안정시켰다는 공을 인정한 것이었다.

1422년 태종이 세상을 떠났다. 세종의 시대가 되었으나 소헌왕후의 집안은 복권되지 못했다. 세종은 청송군수 하담(河擔)으로 하여금 청송객사와 누각을 세우게 했다. 세종 10년인 1428년 청송객사 운봉관(雲鳳館)과 누각 찬경루(讚慶樓)가 세워졌다. 보통 객사에 부속된 누각은 조정 사신의 연회나 유생들의 시문회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지만 찬경루의 용도는 달랐다. 찬경루는 천이 넘쳐 청송심씨 시조묘를 찾을 수 없을 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한 재각(齋閣)이었다. 이러한 왕의 명에는 왕후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겼을지도 모른다. 또한 찬경루는 세종의 여덟 아들이 어머니 소헌왕후를 위해 2칸씩 지었다고 전한다. 심온의 관직이 복위된 것은 문종 때였다.

#2.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183호 찬경루

찬경루 현판
소헌공원의 한가운데에 찬경루가 서 있다. 약간 경사지에 세워져 정면에서 보면 누각의 형태이나 뒤에서 보면 단층에 가까운 모습이다. 찬경루는 정면 4칸, 측면 4칸에 팔작지붕 건물이다. 배면의 가운데 2칸은 온돌방이다. 방의 양측에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고 그 앞에 2단의 계단을 놓아 누상으로 오르게 했다. 나머지 14칸은 모두 우물마루를 깔고 정면과 측면에 계자난간을 이어 둘렀다. 온돌방의 기둥은 사각이며 나머지는 모두 둥근기둥을 세웠다. 주춧돌은 대개 자연석이나 구름과 같은 문양이 새겨진 사각의 주춧돌 하나가 특이하다. 찬경루는 창건 뒤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정조 16년인 1792년에 재건했고 이후에도 수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현재의 모습은 2008년에 다시 중수하고 단청을 한 것이다.

조선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찬경루에 올라 시를 짓고 글을 썼다. 서거정, 김종직, 송시열 등의 시가 전해지며 이심원, 홍성미, 황효원, 한광근, 양극선, 신익선 등의 시편이 누마루에 걸려 있다. 그리고 ‘송백강릉(松柏岡陵)’이라 쓴 커다란 현판이 있다. 처음에는 소헌왕후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썼다고 전한다. 이후 누각과 글씨 모두 화재로 소실되었고 정조 16년인 1792년에 재건하면서 청송도호부사였던 한광근의 아들 한철유가 안평대군의 글씨를 그대로 옮겨 썼다고 한다. 송백강릉은 ‘시경’에 나오는 ‘산과 같고 언덕과 같으며 산마루와 같고 구릉과 같다’는 구절에서 따온 말로 송백으로 표상되는 청송심씨의 지조와 후손들의 번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찬경루 기문은 당시 관찰사인 홍여방이 썼다. 그는 ‘소헌왕후의 덕과 어머니로서의 의표와 금지옥엽인 그의 후손들은 우리 조선 억만 세의 끝없는 복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이 누에 올라 그 옛터를 바라보니 우러러 찬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찬경루라고 명명한다’고 했다. 이후 소헌왕후의 첫째아들은 문종이 되었고 둘째 아들은 세조가 되었다. 심온은 문종 때 복위되었고 소헌왕후의 동생인 심회는 세조 때 영의정에 올랐다. 이후로도 청송심씨 집안의 번영은 계속되었고 소헌왕후는 세상을 떠난 뒤 ‘선인제성소헌왕후(宣仁齊聖昭憲王后)’에 추상(追上)되었다. 안평대군의 ‘송백강릉’과 홍여방의 ‘찬경’은 실제로 실현된 셈이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소헌’은 청송의 중심에 존재하고 찬경루는 보광산을 바라본다. 찬경루는 1984년 12월29일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되었다.

#3.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운봉관

운봉관 현판
청송객사 운봉관은 찬경루 뒤쪽에 위치한다. 객사는 조선시대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 사신들의 숙소였다. 중앙 정당에는 왕의 전패를 모셔놓고 출장 중인 관리와 고을의 부사가 임금에게 예를 올렸다. 때문에 객사는 고을의 중심에 가장 으뜸 되는 형식으로 지어졌는데 정당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익사(翼舍)를 펼쳤고 정당의 지붕은 익사의 지붕보다 높았다. 이러한 형식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국의 읍치에 동일하게 적용되었으며 운봉관 역시 그러한 기본을 따르고 있다. ‘운봉’이란 ‘구름 속의 봉황’이라는 뜻으로 임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운봉관은 잡석을 쌓은 기단 위에 올라있다. 정면 3칸의 정당은 측면과 배면을 벽으로 감싸고 맞배지붕을 올렸다. 좌우 익사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로 온돌방과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봉관은 숙종 43년인 1717년, 순조 12년인 1812년에 중건되었고 고종 8년인 1871년에도 중수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듬해 초봄 분연히 일어난 청송의 유생들은 운봉관에 모여 청송의진(靑松義陣)을 창의했다. 그리고 1918년경 운봉관은 일제에 의해 정당과 서익사가 강제로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청송도호부의 관아 건물들 역시 모두 훼손되었다. 동익사만이 화를 면해 운봉관 현판을 달고 보존되었으며 한동안 청송면사무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현재의 운봉관은 2008년 철거지에 대한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복원한 것이다. 운봉관은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어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 청송군지. 청송문화원. 문화재지정 조사보고서, 경상북도, 198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공동기획지원 : 청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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