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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출판의 도시 대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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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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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 <도서출판 학이사 대표>
출판의 도시 대구, 멋진 말이다. 나는 전화를 할 때 ‘대구 학이사’라고 분명히 말한다. 몰락한 양반집 종손의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대구는 출판의 도시였다. 조선시대 경상감영에서 발간했던 영영장판(嶺營藏版)에서부터 근대에 김광제, 서상돈 선생의 광문사에 이르기까지, 예전부터 대구는 우리나라 지역출판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대구 출판의 부흥은 조선시대와 근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6·25를 지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문학과 잡지 출판의 메카로 불릴 만큼 출판문화가 번성하였다. 특히 6·25 피란시절에도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중심지는 대구였다.

당시 서울의 출판사나 인쇄사가 대구역 근처에 자리 잡고, 정부의 간행물이나 문인들의 작품집, 삐라 등을 인쇄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활성화된 곳이 오늘의 남산동이나 동산동의 인쇄 골목이다. 학이사가 대구에 있게 된 연유도 여기에 있다. 학이사의 전신은 이상사다. 이상사 역시 서울의 다른 출판사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인해 대구로 왔다. 수복 후 대부분의 출판사가 다시 서울로 올라갔지만, 이상사는 1954년 1월4일, 대구 출판등록 1-1호로 등록하고 지금의 종로에 정착했다. 그 후 50여 년이 지나 2007년에 학이사로 다시 태어났다.

나에게는 내 삶을 바꾼 인연들이 있다. 그 중 한 분이 이상사 창업주다. 그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참으로 큰 가르침을 주셨다. 입사할 당시 출판사는 2세 경영 체제에 있었으며, 당신은 회사에 출근해 온 하루를 독서만으로 지내셨다. 그러다가 한 번씩 “자네는 바쁘니 내가 밑줄 친 부분이라도 읽게”라고 하며 당신이 읽은 책을 건네주셨다. 그때 받은 책은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늘 경영주와의 자리에서 “신군에게 이 출판사를 맡기면 영원히 우리 출판사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것이 유언이 되어 오늘의 학이사가 된 것이다.

80년대는 출판의 천국이었다. 대구도 마찬가지였다. 옛날이야기다. 아니, 전설의 고향에 나올 만한 이야기다. 초판을 무조건 3천~5천부를 찍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초판 물량과 비교하면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다. 당시 대구에는 전국을 상대로 영업하는 명망 있는 출판사도 여럿 있었다. 동대구역 수하물에 가거나 정기화물 영업점에 가면 마음속으로 서로의 책 박스 개수를 비교하고, 어느 서점으로 가는지를 박스에 붙은 꼬리표로 확인하던 그리운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 이름만 머릿속에 맴돌 뿐이다.

이제는 지역 출판의 시대다. 지금은 책을 좋아하고, 책이 가지는 물성만 이해한다면 사무실이나 물류창고를 갖추지 않아도 가능하다. 누구나 작가가 되고 누구나 출판사를 운영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1인 출판의 시대다. 서울에 있든 대구에 있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대구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저자가 많다. 또 지역에서 유일하게 출판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가 있다. 이런 자원이 있는데 당연히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출판사는 새로운 작가와 지역콘텐츠를 발굴하고, 지방정부와 지역의 서점, 도서관이 함께 마음을 모은다면 지역에서 모색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일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꿈꾼다. 출판의 도시 대구를.신중현 <도서출판 학이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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