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옥고…백산 우재룡 지사‘독립운동 삶’담아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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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7   |  발행일 2019-09-17 제23면   |  수정 2019-09-17
평전‘대한광복회 우재룡’출간
영천 산남의진서 의병으로 활약
광복회 조직…국권회복에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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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부대 모습. 한국군 강제해산 후 대한제국 군인들은 의병부대에 합류했다. 우재룡은 의병전쟁에 참여해 연습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대한광복회 우재룡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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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들의 삶이 흔히 그렇듯, 우재룡 또한 광복된 조국에서 어떠한 보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을 투쟁해 되찾으려 한 조국은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그런 나라는 아니었다. 하지만 광복된 조국은 그러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대한광복회 우재룡’ 중에서>

대구경북과 평생 깊은 인연을 맺은 독립운동가 백산 우재룡 지사의 평전이 나왔다. 제목은 ‘대한광복회 우재룡’(도서출판 선인). 독립운동을 하다 두번의 무기징역 선고와 20년에 가까운 감옥 생활을 하며 녹록지 않은 삶을 산 우 지사와 그의 동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 지사는 구한말 군인으로 입대해 18세 때 대구진위대에 편입됐다. 1907년 한국군 군대 해산 조치가 내려지자 곧장 영천 보현산을 본거지로 하는 산남의진에 참여해 의병으로 활약했으며, 이후 동지들과 함께 ‘광복회’를 조직한다. ‘광복회’는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무장독립 운동단체다.

우 지사는 국내와 만주를 오가며 군자금을 모금했으며, 경주에서 일제의 세금 운송 마차를 공격하고 친일파를 처단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일제에 여러 차례 체포돼 사형을 구형받기도 한다. 두번째 투옥에서 그는 무려 17년간 옥고를 치른다. 30대에 체포돼 50대에 풀려난 것이다. 우 지사는 출옥 후 광복회 재건사업과 독립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선양사업 등을 하다 71세를 일기로 운명한다.

책은 우 지사의 삶을 시간과 사건별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그는 국권을 침탈하고 있는 일제를 몰아내고, 대한제국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만들고자 의병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이후 인생을 독립운동에 바친다. 책의 말미엔 우 지사가 옥고를 치를 동안, 또 서거 이후 그 가족들이 얼마나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았는지도 보여준다. 총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담백해 잘 읽힌다.

책의 저자인 이성우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과거 석사 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우 지사를 알게 됐고, 1910년대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힌다.

그 시기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1910년대는 독립운동의 객관적 조건이 좋지 않았고, 헌병경찰을 동원한 일제의 무단통치로 인해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가장 어려운 시기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우 지사에 대해 “그는 일제의 무단통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만주와 국내를 오가며 신출귀몰한 활동을 보였다”고 설명한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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