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주택살이 4개월차…집에 대한 小考(소고)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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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7   |  발행일 2019-09-17 제30면   |  수정 2019-09-17
집의 개념은 갈수록 달라져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아닌
갈아타는 투자처로 변질돼
집은 원초적인 기능을 할 때
비로소 더욱 큰 가치가 존재
[화요진단] 주택살이 4개월차…집에 대한 小考(소고)

올 5월에 작은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줄곧 아파트나 빌라에 살다가 주택살이는 처음이다. 이사를 준비할 때 주위에서는 애써 말리곤 했다. 주택은 경제성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큰 비전이 없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관리도 만만치 않다며 지레 겁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주택살이를 자처한 것은 일종의 ‘낭만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푸른 잔디와 쌓여가는 낙엽, 마당 한편 작은 텃밭은 오랜 꿈이었다. ‘감성적인 천성’도 한몫했다. 여기에 올초 겪은 건강상의 문제는 주택살이의 명확한 명분을 제공했다. 아파트마다 칸칸이 고립된 주거문화의 삭막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주택의 낭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사 후 한달쯤 지나서 처참히 깨졌다. 작은 마당의 잔디는 흔히 말하는 ‘그림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1~2주만 관리를 하지 않아도 삐죽삐죽 올라오는 잔디 때문에 마당은 엉망이 됐다.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는 요상한 벌레에 화들짝 놀라야 했고, 모기와 개미와의 ‘사소한 전쟁’도 만만치 않았다.

길고양이들은 ‘식구 아닌 식구’로 맞아야 했다. 낯선 인기척에 처음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더니 이제는 안면을 텄다고 시쳇말로 ‘생까신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낙엽도 성가시기는 마찬가지다. ‘떨어지는 낙엽이 하도 고와 우수수 쌓여만 가도 쓸지 않고 두고 보네’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는, 시집 속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담을 타고 넘어온 이웃집 나무는 하루가 멀다하고 낙엽을 ‘우수수 투하’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시인의 말처럼 하도 고와 쓸지 않고 두고 보았다. 하지만 바람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낙엽은 ‘낙엽 덩이’에 불과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재난 대비’에 나서야 했다. 배수구를 일일이 점검하고, 마당에 둔 화분을 집안으로 옮기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했다. 누수가 생기는 ‘대형 사고’가 터질 땐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전기가 나가면 촛불을 켜야 할 판이다. 모두 예전에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만 하면 되던 일을 이제는 직접 알아보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주택살이였다. 주택살이는 ‘안해도 될 일을 해야 하는 불편함과 수고스러움’이 있다는 것을 4개월 만에 알게 됐다.

낭만은 무참히 깨졌지만 주택살이의 후회는 없다. 아파트나 빌라로 회귀할 계획도 없다. 이유는 또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불편함과 수고스러움도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과 골목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 모퉁이 구멍가게 아주머니의 인심은 정겹기만 하고, 오갈 때마다 반기는 세탁소 아저씨의 인사는 살갑기만 하다. 여태 느껴 보지 못한 삶의 질감을 주택살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집은 ‘가격’과 ‘브랜드’로 가늠되고 있다. 수십억 아파트는 우월감과 성공의 잣대가 된 지 오래다. 부귀영화의 상징처럼 굳어졌고, 그것은 집착과 열망으로 변형되고 있다. 집착과 열망은 다시 주거문화의 가치를 뒤흔들고 있다. 집에 대한 소유개념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집은 ‘내 것’이 아닌 얼마간 머물렀다가 시세 좋을 때 ‘갈아타는’ 투자처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내면의 온기는 없어지고 필사적으로 외형만 쫓게 되는 것이 지금의 집이다. 교육의 볼모가 되어 잠시 몸 담는 ‘거처’가 된 지도 오래다. 그런 모습이 때론 고독해 보인다. 마치 모래 위에 지은 두꺼비 집처럼 불안하기도 하다.

인간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집은 ‘정주 문명’의 핵심이다. 추위와 노천을 가리는 기본적인 기능은 물론 개인과 공공의 경험이 함축된 공간이 바로 집이다. 집은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의 기능이 작동되어야 한다. 삶에 대한 본질이 내재되고 기억과 추억이 켜켜이 저장되고 흔적으로 남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우월감이 되고 자부심이 된다면, 그것은 수십억 가격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주택살이를 계속 자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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