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보수통합’은 생각하지도 마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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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8   |  발행일 2019-09-18 제30면   |  수정 2020-09-08
보수분열·연동비례제 도입
내년 총선서 ‘與 수성’ 전망
위기의 한국당 지지율 답보
보수우파 통합 목매지 말고
새 비전과 가능성 제시해야
[수요칼럼] ‘보수통합’은 생각하지도 마
황태순 정치평론가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현실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시사하는 바 크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이 코끼리(미국 공화당)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레이코프는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었다. 사임의 위기에 몰렸던 닉슨 대통령이 TV에 나와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한 순간, 대부분의 미국 국민들은 닉슨을 사기꾼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년 4월15일 21대 총선이 불과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의 호사가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문재인정권이 실정을 거듭하고 있어도 내년 총선에서 거뜬하게 수성에 성공할 것이라고 한다. 그 근거로 드는 것이 두 가지다. 첫째는 보수의 분열이고, 둘째는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선거제를 도입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수우파의 입장에서는 ‘보수 통합’이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 우리나라는 조국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둘러싼 한 달여의 공방전 끝에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상당히 떨어졌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거의 답보인 상태다. 적지 않은 국민은 자유한국당이 야당답지 못한 정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투쟁력도 별 볼일이 없고 그렇다고 수권야당으로서 눈에 띄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절박함과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월요일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외부병원 입원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삭발식 소식이다. 내년 총선을 목전에 둔 현 시점에서 보수우파의 현 주소와 앞으로 주어진 숙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사건이다.

한나라당을 거쳐 새누리당으로 이어져 오던 보수정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 문제를 두고 세 갈래로 나뉘었다. 현재의 자유한국당,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한 바른정당(현 바른미래당), 그리고 조원진 의원의 대한애국당(현 우리공화당)으로 나뉜 것이다.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많은 사람이 무슨 주문을 외우듯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읊조린다. 내년 총선에서 세 당이 각자 나오면 모두가 죽고 결국 문재인정권에 어부지리만 준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레이코프가 말한 ‘프레임’에 갇힌 것은 아닐까?

우선 바른미래당이 보수정당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른미래당은 유승민의 바른정당과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합당한 정당이다. 28명 의원 중 과거 새누리당 출신은 불과 8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0명 의원은 굳이 따지면 과거 민주당에서 탈당해 나왔던 인사들이다. 또 손학규 대표를 두고 보수정치인으로 규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바른미래당은 보수정당이 아니라 호남에 기반을 둔 중도좌파 정당에 가깝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선거제가 도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전대미문의 한국판 ‘게리맨더링’이지만 도입되면 도입되는대로 맞추어 나가면 된다. 좌파진영의 1중대-2중대를 걱정할 필요가 뭐 있나. 보수우파도 ‘정책연대-선거공조-공동 집권’의 새로운 프레임을 짜면 된다. 그런데도 지금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안철수와 유승민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세상이 끝나기라도 하는 듯 좌불안석이다.

솔직히 내년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선거제가 도입되고, 바른미래당이 독자출마의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상대적으로 피해를 많이 보는 정당은 아마도 민주당일 것이다. 정치공학과 선거공학의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리저리 기웃거릴 필요가 없다. 나만의 비전과 가능성을 보여주면 유권자들은 선택하기 마련이다. ‘보수 통합’은 생각하지도 마. 지금 중요한 것은 먼저 환골탈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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