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별다른 의도 없습니다

  • 박종문
  • |
  • 입력 2019-09-23 08:02  |  수정 2020-09-09 14:09  |  발행일 2019-09-23 제15면
20190923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중1 음악수업을 참관했다. 공익광고 캠페인송 만들기 수업이었다. 익숙한 곡을 가져와 개사하고 안무도 짜서 모둠별로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남녀혼반 서른 명 남짓, 여학생들은 차분한 편이었다. 그런데 남학생들은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자신의 발표에 반응해 줄 친구들을 생각하니 신나는데 관중(?)까지 많으니 기분이 너무 좋은 것이다. 다른 모둠이 발표할 때마다 몸이 가만히 있질 못한다. 후렴은 따라 부르고 어깨를 흔든다. 드디어 발표 차례, 주목을 받으면 육체에 수많은 반응세포가 자라나 온몸을 뒤덮고 작은 자극에도 아드레날린이 마구 뿜어 나온다. 둠칫둠칫 힙합 춤을 추며 속사포로 랩을 쏟아내며 스스로에게 심취한다. 몇몇의 남자애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어 뒤로 넘어간다. 젊은 여교사는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고 수업을 이끌었다.

이렇다 보니 중1 남학생의 쉬는 시간은 정글 숲이다. 방충망 구멍 뚫기 놀이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도무지 장난이 통하지 않는 과묵한 친구의 머리를 슬쩍 치는 건, 제일 빨리 자신의 다이내믹한 세계로 끌어들이는 화약이다. 넘어진 척 그 친구 앞에 쓰러지거나, 우유를 먹는데 툭 건드려 얼굴에 쏟게 하는 건 기본이다. 학교 CCTV가 화질이 엄청나게 좋은 줄 모르고 밤에 몰래 미리 열어둔 2층 창문을 타고 올라가 어두운 복도를 뛰어 다니며 잡기(러닝맨)를 하려다가 덜미가 잡히기도 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행동과 감정이 앞서는 이들의 요즘 생활지도는 ‘타인의 입장에 서기’이다. 그 행동이 왜 분노를 일으키는지, 그 사과의 말이 왜 진정성 있게 들리지 않는지 하나하나 스토리를 이으며 상대의 감정 밑바닥을 알아가도록 묻고 대답하면서 잘못을 알게 한다.

‘그, 그것’을 의미하는 ‘일레(ille)’에서 따온 ‘일리이즘(illeism)’은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미국 미시간대의 그로스만은 실험집단이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해 신뢰와 좌절, 분노 등을 어떤 관계로 맺게 될지 연구했는데, 자신의 긍정적 감정을 과대 예측하고, 부정적 감정을 과소 예측했던 참가자들이 3인칭 관점으로 일기를 쓰면서 더 겸손해지고 다른 이의 입장을 더 잘 고려하게 되었다는 보고를 내놓았다. 장기적으로 생각과 감정 통제에 도움이 되었다는 결론이다.

같은 맥락으로, 관점을 바꾸거나 주인공을 대립되는 상대로 교체하는 것은 좋은 인성교육 방법이다. 자유학년제 ‘동화창작’ 수업에서 쓴 내용이다. ‘동물가족이 모처럼 소풍을 갔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가는 길에 개미들이 열심히 식량을 운반하고 있었다. 나뭇가지로 개미굴을 여기저기 쑤셨다. 깜짝 놀란 개미들이 이리저리 도망갔다. 키득키득. 또 가는데 가게 앞에 늙은 개가 자고 있었다. 돌멩이를 던지니 잠이 깨어 엉뚱한 곳을 보고 짖었다 …’

평소에 장난을 치는 것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최고의 악동에게 개미 대신 자신을 넣어서 속편으로 지어보라고 했더니 순식간에 얼굴에 장난기가 싹 가셨다. “제가 왜요? 저는 힘이 센데요….” “그럼 힘이 약하면 일하다가 느닷없이 집이 다 무너지는 일을 당하고, 아무 이유 없이 돌멩이에 맞아도 되나?” “이건 이야기잖아요….” “그래, 이야기지, 실제면 얼마나 화가 날까?”

노벨상 수상자 마르케스는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 문학 선생님을 기억한다. 그는 구태의연한 해석을 하지 않은 채 우리를 훌륭한 책의 미로로 데려갔다. 이 방법은 학생의 참여를 유도하여 멋진 시를 자유롭게 상상하게끔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문학수업은 훌륭한 독서를 위한 안내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의 또 다른 의도는 아이들을 놀라게 할 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으윽, 난 또 과했다.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기자 이미지

박종문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