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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했던 황무지 맨손으로 일궈…60년 만에 ‘희망의 부촌’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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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창훈기자
  • 20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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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간촌의 기적’ 군위 화산마을

군위 고로면 화산마을 전경. 화산마을은 1960년대 산지개간정책에 따라 180가구가 집단이주하면서 조성됐다. <군위군 제공>
7.6㎞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숨이 벅찰 지경에 이르러서야 도착하는 곳. 군위 고로면 화산마을은 말 그대로 ‘하늘 아래 첫 동네’다.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 없는 데다 택배 배달원도 찾지 않을 정도로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른 아침 자연이 선사하는 풍광만큼은 말로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장관을 이룬다. 동틀 무렵 펼쳐지는 운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신선의 세계에서 노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화산마을의 절경에 취한 서애 류성룡 선생은 ‘누가 화산에 밭을 일구려 하는가. 신선의 근본은 여기서 시작되었는데. 여보게, 구름사다리를 빌려 주구려. 옥정에 가을바람 불면 푸른 연꽃 따리로다’라는 칠언절구의 시를 바위에 새겨 놓았다.


꼬불꼬불한 7.6㎞ 산길 걸어서
해발 700m 하늘 아래 첫 동네
1962년 이주 주민 힘으로 개척

배고팠던 지난날 생생히 기억
매일 점심·저녁 공동급식 해결

고랭지채소밭·해바라기밭 조성
빼어난 경관 자랑 방문객 몰려

주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 협력
행복마을콘테스트서 잇단 수상


◆1962년 불모지에 첫발

화산마을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60년대 중앙정부 주도의 산지개간정책에 따라 조성된 이 마을의 역사는 180가구가 집단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불모지였던 화산에 조성된 마을에는 변변한 이름조차 없었다. 그저 A·B·C·D 등 4개의 지구로 불리던 개간촌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기에 마을을 찾은 정착민 대부분이 가난하거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었다.

이주 당시 청장년층은 노인과 아이를 등에 업거나 지게에 지고 꼬박 이틀이나 걸리는 산길을 걸어 마을에 도착했다고 한다. 길도 나지 않은 곳에 조성된 마을인 만큼 언감생심 전기와 수도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지금도 마을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은 “캄캄한 밤 신녕역에 첫발을 내디뎠던 1962년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며 이주 당시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맨손으로 일군 삶터

이틀을 꼬박 걸어서야 외부 세상과 닿을 수 있었기에 이주민에게 외로움은 사무칠 정도로 컸다. 자연히 눈을 뜨면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이야말로 든든한 버팀목이자 ‘비빌 언덕’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정착민 간 화합에 가장 큰 버팀목이 됐다. 마을에 단 하나뿐인 우물 앞에서 물을 길을 때면 모두가 공평하게 한 바가지씩 떠갔다는 불문율이 대표적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정착민 사이에는 가족 그 이상의 연결고리가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배가 고팠던 지난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주민은 매일 점심과 저녁을 마을공동급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구성원 모두가 굶주림에서 오는 소외감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물론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배려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초기 정착민이 삽과 곡괭이, 그리고 달랑 톱 하나 들고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에게 의지하며 맨손으로 일궈낸 삶의 터전인 화산마을. 지난 60년간 지속된 정착민의 삶이 산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길, 밭, 그리고 치유

길에 대한 화산마을 주민의 애착은 남다르다. 마을로 향하는 꼬불꼬불한 7.6㎞의 산길은 정착 초기 온전히 주민의 힘으로만 뚫었다. 화산마을과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한 탓에 이 길을 향한 주민의 마음가짐은 특별하다. 구역을 나눠 제초작업에 나서는 것은 물론 겨우내 제설작업에도 소홀함이 없다.

마을의 소중한 보물은 따로 있다. 억척스럽게 조성한 고랭지 채소밭이다. 눈물로 얼룩진 삶터이자 오랜 세월 생계를 이어주었던 밭은 어느 순간 드넓은 자연 속에 녹아들면서 그야말로 ‘전국에서 유일한, 화산마을만이 지닌’ 아름다운 경관으로 거듭났다.

이 마을은 빼어난 자연경관 이외에도 특이한 점이 있다. 지금까지 이 마을에는 치매환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주민은 “‘사람이 가장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해발 700m 고지에 자리 잡은 이 마을에는 사시사철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오감을 자극하는 깨끗한 바람’과 ‘마음을 달래주는 풍광’이라는 천연치료제가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국가 인정 행복마을

화산마을에도 위기는 있었다. 군부대 이전과 초등학교 폐교 등을 겪으면서 20여 가구로 줄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귀촌 등의 영향으로 인구가 41%(귀촌은 58%) 늘어나면서, 현재는 57가구(92명)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외에도 놀라운 변화는 더 있다. 3배 이상 늘어난 방문객 수가 그렇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마을일에 대한 주민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평한다. 정착민·귀촌인 할 것 없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참여하는 분위기에서 비롯됐다는 것. 이는 정착민의 노하우와 귀촌인의 아이디어가 어우러지면서 나타나는 시너지로 이어졌다.

주민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올해가 더욱 그렇다. 지난 7월 황무지로 방치됐던 9천917㎡(3천평)의 마을부지에 해바라기밭을 조성한 뒤 주민과 출향인, 방문객 등이 함께하는 ‘바람언덕 해바라기 잔치 한마당’을 개최했다. 급격한 고령화 현상에 따른 인구감소로 신음하는 오늘날 우리 농촌 현실과 비교할 때 화산마을의 변화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기에 충분하다.

실제 화산마을은 지난달 28일 농식품부가 주관한 ‘제6회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에서 경관·환경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가난하고 척박했던 과거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행복이 넘쳐 흐르는 마을로 거듭난 셈이다. 이 콘테스트에서 주민은 성과발표와 퍼포먼스를 통해 60년 전 개척민의 의지를 본받고 이를 농업유산으로 보전하기 위해 하나로 화합해 노력하는 모습을 선보이면서 감동과 호평을 받았다.

이에 앞서 지난 7월에는 경북도 주최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에서 경관·환경 분야 대상을 수상하는 등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경관마을로 우뚝 섰다.

◆‘화산다움’을 지키자

화산마을 주민이라면 스스로가 지켜내야 할 약속이 있다. ‘우리 마을은 우리가 지키자’는 슬로건 아래 자발적으로 제정한 마을경관 규약이다. ‘지킴의 가치’ 실현을 위해 주민 스스로가 화산경관 지킴이단을 구성하고, 경관활동가를 자처하고 있다. 이종은 화산마을 이장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마을이 훼손되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실천하는 것이 미래 화산을 위한 약속”이라면서 “지금의 ‘화산다움’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농촌미학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군위=마창훈기자 topg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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