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0] 돈을 다루는 우리 시대 문학의 출발점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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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6   |  발행일 2019-09-26 제24면   |  수정 2019-09-26
돈 좇아 살 수 밖에 없는 현실…화폐시스템의 대안 내놓다
소설 ‘마지막 감식’ 새로운 돈의 탐구
기부·증여로 돌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위폐 제작 후 배포…자본주의 균열 시도
[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0] 돈을 다루는 우리 시대 문학의 출발점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0] 돈을 다루는 우리 시대 문학의 출발점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모든 예술작품이 꿈꾸는 것은 예외가 되는 것이다. 기존의 예술이 보인 적이 없는 새로운 면모를 구현해 내는 것, 이것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모든 예술의 목표라 할 수 있다. 물론 시대에 따른 차이는 있다. 과거 예술작품들이 전통적인 흐름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으로 새로운 경지를 구현코자 했다면, 현대예술의 경우는 전통이나 기존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길을 찾아 새로움을 추구한다. 크게 보아 이러한 차이가 있어도, 새로움이 새로움으로 드러나는 것이 대체로 형식에서라는 점은 공통된다.

여기에서도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형식상의 새로움이 아니라 내용상의 새로움으로 자기만의 몫을 만들고자 하는 작품이 그렇다. 물론 이런 문학작품도 문학사를 훑어볼 때 흔하다면 흔한 것이다. 주류 문학이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들 즉 하위문학이나 대중문학, 장르문학 등의 일부 갈래가 처음 생겨날 때에는 내용상의 새로움으로 자신을 치장하게 마련이었던 까닭이다. 고급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에 위치하는 중간문학(Middlebrow fiction)도 마찬가지이고, 칙릿(chick-lit)이나 법의학 소설 같은 것처럼 최근에 들어 보이는 장르문학 내의 세분화도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오늘 이야기의 대상은 한국소설의 흐름에 비춰볼 때 내용상 새로운 지점을 차지한 작품에 해당하는 정광모의 장편소설 ‘마지막 감식’(강, 2019)이다. 이 소설은 돈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폐 시스템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자기만의 고유성을 획득한다. 돈이야 고대에서부터 사용된 것이니 전혀 새로울 것이 없지만, 따지고 보면 돈이 사용되는 사회 원리를 전면적으로 다룬 문학작품이 국내외적으로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돈과 부유함에 대한 욕망, 돈이 없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온갖 문제, 돈을 쓰는 각종 행태의 의미 등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통화 시스템 자체를 문제시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보자면 장현도의 ‘돈’(새움, 2013)과 ‘골드 스캔들’(새움, 2015) 정도가 이에 해당될 텐데, 이들은 할리우드 영화 같은 이야기 전개의 매끄러움은 있지만 곰곰 생각해야 할 의미 탐구는 약해서 아쉬운 경우였다.

정광모의 ‘마지막 감식’은 다르다. 사건의 극적인 설정이 다소 지나치고 인물들이 유형화되어 있으며 주인공의 변모가 설득력이 약해 보편성을 얻기 어려운 경우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작품의 탐구 의지에 비춰보면 이 모두가 다 용납될 만하다. 사실 세상의 일 중에는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것들이 적지 않아서, 세상사를 작품화하려는 경우라면 사건 설정의 보편성에 얽매이지 않고자 할 수도 있다. 보편성이란 어떤 의미에서도 창작의 굴레가 아니고 깊이 있는 탐구의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좋은 작품의 지표지만, 탐구의 열정이 앞설 때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특성이므로 작품마다 그것을 들이밀 것은 아니다. ‘마지막 감식’은 우리들 모두가 언제나 중요한 것으로 대하며 그렇게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 양 생각하는 돈·화폐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는 점에서 개별성에 머물러 있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 감식’의 주요 인물은 한남수와 공미선, 양원진, 허태곤 4인이다. 허태곤은 이 소설의 주요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저축은행 지점장이었다가 지금은 길거리의 걸인 행세를 하면서 위조지폐를 만들어 조금씩 배포한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 할 만한 이러한 일을 하는 데는 가족사의 비극이 깔려 있다. 경영진이 저지른 비리와 부실로 은행이 경영 정지를 당했을 때, 원양어선을 타며 평생 모은 돈 몇 억원을 노후자금으로 쓰려고 투자했던 인물이 그의 집에 숨어들어와 집에 있는 상패로 딸의 머리를 집중 폭행하고 도망쳐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딸이 심각한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있다가 자살하자, 그 충격으로 식음을 전폐하던 아내도 두 달 후 쓰러져 사망하였다. 돈이라는 괴물이 남자를 미치게 만들었고 딸과 아내를 차례로 집어삼킨 이 사건 이후, 허태곤은 이 괴물을 차단하고자 노력한다. 그가 선택한 것은 위조지폐를 만들어 화폐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길이다. 괴물 같은 돈이 아니라 ‘기부와 증여로 돌아가는 세상’(125쪽)을 꿈꾸면서, 구걸하여 번 돈에 자기 돈 아홉 배를 더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일이다.

허태곤이 만든 위조지폐의 유포를 돕는 인물이 이 소설의 주인공 한남수이다. 그는 사모투자펀드를 운용하는 MT삼조회사의 비서였다가 대표의 뜻에 이의를 제기하여 해고된 뒤 허태곤과 행동을 같이 한다. 허태권의 기부 행위에 동조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금융권이 경제를 망치는 악당 천지’인 현실에서 유통되는 화폐 액수 180조원에 만 원 위조지폐 몇 장을 더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리라는 생각도 없지 않은 까닭이다. 이와 동시에 그는 ‘일종의 컴퓨터화폐 시스템인 반두’를 사용하는 공동체(201~202쪽)에서 목공과 인테리어 일을 한다.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의 대안적인 삶에 발을 담그는 것이다.

공미선은 이 공동체에서 한남수와 인연을 맺는 인물이다. 약사인 그녀는 ‘돈이 힘을 제법 잃어버리는 세상’(265쪽)을 바라는 마음에 반두마을에 관여하지만, 공동체적인 삶이 개인의 자유를 빼앗는 단점을 경계하여 반두를 쓰는 20퍼센트의 삶만 지역화폐와 공동체적인 마을 활동에 투입한다. 이러한 지혜 혹은 균형감각을 가지고 그녀는, ‘화폐라는 괴물과 싸우는 게릴라’는 위폐가 아니라 지역화폐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한남수를 교정하는 역할을 한다.

끝으로 언급할 인물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디지털분석과 감식실에서 일하는 양원진이다. 위조지폐를 감식하는 임무를 맡고 경찰의 수사에도 관여하던 그는 한남수를 통해 위폐를 만드는 일의 의미와 허태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태에 대한 그의 태도는, 수사망이 좁혀진 것을 한남수에게 알려 허태곤이 위조지폐 제작소를 불태우고 잠적할 수 있게 한 데서 확인된다.

이상의 소개를 통해 확인되듯이 ‘마지막 감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화폐 시스템이 갖는 문제와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짐멜의 ‘돈의 철학’ 같은 역작이 보이는 심도 있는 탐구를 기대할 것은 아니지만, 현대 사회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드러내고 대안적인 삶에 대한 지향을 명확히 한다는 데서 자기 몫을 얻는다. 위조지폐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토대를 갉는 범죄’로서 살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장 무서운 것이며(138쪽), 위조보다 치밀한 배포가 목적일 때(151쪽) 위폐범은 지구를 삼킨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228쪽)이라는 생각이 이 소설의 바탕을 이룬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를 끌어안는 방식으로, 허태곤 가족의 비극과 공미선의 균형 잡힌 모색, 양원진의 실질적인 동조를 설정해 두었다. 돈을 좇아 살 수밖에 없기에 돈에 휘둘리게 되는 일상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비극을 환기하면서, 그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돈과 소설은 전통적으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자본과 예술 자체가 그렇기도 하다. 자본으로서의 돈은 자신을 증식시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문학예술은 있는 자본을 소진시키고 돈을 이야기하는 경우 그 가치며 위력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둘은 유사점을 하나 갖는다. 돈의 위력이 극대화된 것이 현대에 들어서인 것처럼 소설의 기능이 중시된 것 또한 현대사회에서이다. 현대사회를 탐구하는 가장 적절한 예술로 장편소설이 그 위세를 얻게 된 것인데,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소설이 돈을 탐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할 만하다. ‘마지막 감식’이 이러한 탐구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돈의 탐구란 우리 사회의 천민자본주의적 풍토, 경제제일주의의 경향을 약화시키는 길의 모색에 다름 없는 까닭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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