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학의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 호기심·기대감으로 다가서는 ‘이상한 나라’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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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7   |  발행일 2019-09-27 제38면   |  수정 2020-09-08
신나게 놀면서 세계문화 배우는 ‘마법의 시간’
여러 박물관 가운데 최근 10여 년 사이에 가장 적극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곳이 바로 어린이 박물관이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제 어린이는 그냥 와서 전시를 보고 가는 수동적 관람객이 아니라 그들만의 경험과 지식을 분명히 갖고 있고, 박물관이란 장소에서 사회적 교류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는 능동적 학습자로 변했다. 이에 따라 어린이들을 놀이를 통해 관찰하고 배우고 느끼고 표현하는 적극적인 학습자로 보고, 전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두 박물관은 ‘최고의 배움은 여행에서 얻어진다’고 했던 어느 유명 작가의 말에 귀 기울이며 돌아보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여행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도 함께 느끼게 될 거라 믿는다.

어린 여행자가 체험하는 여러 나라의 삶과 풍경

캐나다 오타와 어린이 박물관

세계와 만날 수 있는 ‘여행’ 콘셉트
교통·시장·통관항구 고유한 모습들
나라별 예술·문화·역사 위대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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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어린이 박물관은 어린이 손님에 맞게 시계를 낮게 달아둔 것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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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어린이 박물관 교차로 입구에 세워진 파키스탄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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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 작은 ‘루시 서점’이 캐나다 어린이 박물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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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어린이 박물관 내 시장놀이를 할 수 있는 토론토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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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어린이 박물관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장소 중 하나인 통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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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처럼 만든 캐나다 어린이 박물관의 입장권.


캐나다 사람들은 계절이나 날씨에 상관없이 가족이 신나게 놀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오타와의 ‘캐나다 어린이 박물관’을 권한다. 이 박물관의 콘셉트는 세계를 만나게 하는 ‘여행’이다. 아이들에게 여행이란 작은 모험과 다름없다. 전 세계를 어린이의 눈으로 경험케 하는 곳, 더구나 각국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어느 한 곳도 소홀하게 꾸며지지 않은 이곳이 인기를 끄는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1989년 개관한 캐나다 어린이 박물관은 지금까지 800만명이 넘는 어린이와 그 가족들이 찾을 정도로 인기 있는 곳이다. 입장료는 같이 있는 역사박물관 입장료에 포함돼 있어 따로 내지 않아도 되고, 넓은 정원에서는 랜드마크인 캐나다 국회의사당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리도(Rideau) 운하도 바라볼 수 있어 즐거움을 더한다. 이 박물관의 슬로건은 ‘위대한 모험(Great Adventure)’. 문화에 대한 지식의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려준다. 입구에서 여권(패스포트)처럼 생긴 입장권을 받아 여러 나라의 상징적 장소를 방문한 뒤 나라별로 입국 스탬프를 찍으면 작은 기념품도 받게 된다. 예술, 문화, 역사가 기억 속에 남겨지는 첫 발자국인 셈. 호기심과 기대감이 잘 결합된 구조다.

교차로 입구를 통과하면 화려한 그림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그려진 파키스탄 버스와 태국의 교통수단인 툭툭(Tuktuk), 1800년대 싱가포르의 교통수단이었던 트라이쇼(Trishaw), 마을에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 작은 서점, 시장놀이를 할 수 있는 차이나타운,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인 통관항구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고유한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일본 전통 가옥에서 전통놀이인 종이접기(오리가미)를 직접 해볼 수 있으며, 인도 서부지방 신화 속의 결혼이야기가 그려진 벽화도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그림자극 와양(Wayang) 인형도 만져 보고, 멕시코 대표 요리인 토르티야(Tortilla)를 만드는 체험도 귀한 경험으로 쌓인다. 아랍 남자들이 머리에 쓰는 사각형 천을 두르고 발목까지 닿는 흰색 긴 소매 의상도 입어볼 수 있으며,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전통가옥에서 얇고 긴 외투 형태의 전통의상도 체험할 수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 안에서 미로 찾기를 하고, 사막의 낙타조형물 앞에서는 기념사진도 남긴다. 그리고 다양한 가게에서는 아이들이 주인도 되고, 손님도 되는 즐거운 체험공간이 펼쳐져 있다.

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영화관, 캐나다가 최초로 발명한 아이맥스(IMAX) 전시관까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아이들이 직접 음향 및 조명 등을 조절해 무대 연출을 할 수 있는 소극장도 탐이 난다. 무대 뒤 분장실에서 의상을 골라 입고 무대에서 동행한 가족들과 함께 소규모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시간도 부럽기 그지없다. 박물관의 다양성과 풍부한 콘텐츠들이 어린이의 속도로 탐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에 나는 무릎을 쳤다.

누구나 이 박물관에 들어서면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를 떠올릴 것이다. ‘모든 모험은 첫걸음을 필요로 하지.…너는 너만의 지도를 만들어야지.…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 내 기분은 행복이야.…어제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고’. 7세 앨리스가 토끼굴에서 떨어져 도착한 이상한 나라에서 마법 같은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꿈에서 깨어난다는 그 동화에 나오는 ‘이상한 나라’가 바로 이 박물관이 아닐까.

이 곳은 세계인들이 살고, 배우고, 일하고, 노는 풍경에 익숙하게 만든다. 그게 어린이가 누릴 소중한 권리 중 하나인 것처럼.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지만, 아침 일찍 토끼굴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어린 여행자들이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박물관의 이런 슬로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어린이 박물관으로! 그러면 아이들은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오감으로 체험하는 가깝고도 먼 亞 문화·역사


日 규슈국립박물관 ‘아짓파’

고대부터 활발한 교역 통한 번성
포장마차처럼 마련한 국가별 부스
전통의상·생활용품·장난감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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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국립박물관 ‘아짓파’의 체험학습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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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국립박물관 ‘아짓파’내 한국관과 몽골관.
일본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에 자리한 규슈국립박물관은 ‘일본문화는 아시아와 어떠한 관계를 맺으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왔는가’를 테마로 2005년 10월에 개관한 일본의 네 번째 국립박물관이다. 메이지 시대 이후 100년 만에 지어져 화제를 모은 일본 최대 규모의 국립박물관으로 ‘바다의 길, 아시아의 길(海の道, アジアの路)’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옛날부터 아시아 국가와의 교류를 통해 번성했던 이 지역에 잘 어울린다.

규슈국립박물관은 후쿠오카 인근의 유명 관광지 다자이후텐만구에서 무빙워크로 층층이 연결되어 접근성이 좋다. 에메랄드빛 외관이 돋보이는 박물관을 들어서면 1층에 아시아 문화의 체험형 전시공간 ‘아짓파(あじっぱ)’가 자리하고 있다. 오감(五感)으로 아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얼핏 보면 요란한 외관이 영락없는 기념품 가게다.

여행을 모험과 순례로 나눠본다면 ‘아짓파’는 순례에 더 가까운 여행일 것이다. ‘가깝고도 먼’ 아시아의 나라들을 찬찬히 경험해본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경이로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 노 하라파(아시아의 들판)’의 줄임말인 ‘아짓파’는 고대부터 일본이 교류해 온 아시아와 유럽 문화의 다채로운 감각을 방문객들에게 전해주는 무료 인터랙티브 전시장이다. 한국, 중국, 몽골,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옛날 일본과 활발한 교역을 벌였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의 부스가 포장마차처럼 마련되어 있고, 각 나라의 전통적인 의상, 생활용품, 악기, 장난감, 인형 등도 만져볼 수 있어 그야말로 아시아의 활기찬 전통시장에 온 기분이다.

눈길을 끄는 작품들의 전시장인 ‘아지안’과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고고학자 체험을 해볼 수 있는 테마공간 ‘아지갸라’, 그리고 아시아의 음악을 듣거나, 풍경을 볼 수 있는 ‘다나다’로 이루어져 있는 ‘아짓파’의 색깔 있는 콘텐츠들은 ‘아시아의 교류’라는 공간의 모토를 잘 살리면서, 학습과 체험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전시는 조금씩 변화하지만 ‘아시아를 느낀다’라는 주제를 늘 지켜가고 있다는 그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한국관에는 팽이, 윷, 제기 등의 전통놀이기구와 탈, 전통 의상 등도 있고 또 한국의 조각보를 이용한 그림 그리기, 퍼즐 맞추기를 할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호랑이가 그려진 민화도 친숙하다. 게다가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 타이 체스 ‘맥룩’, 인도네시아의 전통놀이 ‘다콘’ 같은 것도 스스럼없이 만져보고, 재미있게 겨뤄볼 수 있다.

나는 ‘아짓파’를 나서며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다문화’를 생각했다. 다문화(多文化)는 당연히 ‘복합문화’이어야 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이어야 맞다. 그냥 여럿이 모여만 있는 게 다문화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배타적인 이민정책과 고집스러운 동화(同化)정책으로는 아시아와 세계를 마음껏 호흡한다는 건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나는 ‘다문화’를 통해 창의성을 기대한다. 창의성이란 독립적인 자신의 생각과 표현방식,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방식이 아닌가. 많은 사람이 눈앞에 바로 보이는 것을 넘어서 그 이면에 감춰진 것을 볼 수 있는 능력, 주변을 보거나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사고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다문화’를 ‘아짓파’에서 조금이나마 느껴보기를 기대한다.

대구교육박물관장
사진=김선국 사진가

"세상을 누비는 여행길 세상의 길위에서 당당"

여행을 통해 창의성, 자신감, 열정, 친화력, 독립심과 끈기를 얻었다는데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경쟁하기보다는 스스로 성장하는 가장 좋은 계기가 여행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놀면서 공부한다’는 당의(糖衣)가 가장 어울리는 것이 여행일 것이지만, 여행자들은 여행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고 체험하며, 그것을 자기 삶의 일부로 만드는 사람이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 중 많은 이가 훌륭한 여행자였다. 우리가 세상을 누비는 여행길에서 돌아올 아이들을 문밖에서 느긋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 박물관들이 ‘세상의 길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아이’를 만나게 해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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