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마음 톡톡]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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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7   |  발행일 2019-09-27 제39면   |  수정 2020-09-08
세상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한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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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위 맑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왼쪽 위 작은 사진은 구름을 ‘만질수 없는 불가사의한 구조물’이라고 표현한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높아진 하늘에 구름이 떠간다. 새털 같은 구름을 한동안 바라보다 구름을 사랑한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1821~1867)가 떠올랐다. 그는 누구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기… 저 찬란한 구름을!”(‘이방인’)이라고 했다. 한 번은 보들레르의 산문시 ‘스프와 구름’을 읽다가 창밖의 구름과 조우한 나는 신선한 감흥에 젖었었다. 구름은 신의 수증기이고 움직이는 건축물이며, 만질 수 없는 불가사의한 구조물이라는 표현에 무릎을 쳤다.

“내 귀여운 미친 애인이 나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식당의 열린 창으로 신의 수증기로 만든 움직이는 건축물을, 만져지지 않는 불가사의한 구조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모든 환영은 거의 내 예쁜 애인의 눈만큼, 초록빛 눈을 가진 미친 요물만큼 아름답군.” 그런데 갑자기 나는 주먹으로 등을 한 방 세차게 얻어 맞았다. 그리고 나는 쉰 듯한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었다. 내 사랑하는 귀여운 애인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구름 장수 바보 영감 같으니라고. 어서 그 스프나 먹지 못하겠어요?” 스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구름이 살살 풀어지면서 움직이는 광경이 머리를 스쳐간다.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의 상승이미지를 타고 몽상의 세계에 젖어들게 한다. 시인에게는 승화의 순간이기도 하다. 15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현대적인 언어표현과 감각이 신선하다. 좋은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다.

갇혀진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
고통·고난 삶에서 달아나고 싶은 갈망
신의 수증기로 만든 움직이는 건축물
무수히 모양 바꾸는 신비로움에 매료

인간의 추한 모습에서 찾으려 했던 美
절대적·영원한 아름다움은 존재 안해
한세기후 인정받은 천재작가 상징주의


보들레르는 어려서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고독을 느꼈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1년 후 재혼했다. 그 후 보들레르의 삶은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 보들레르는 세상은 지옥 그 자체라며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든지’에서 이 세상을 병원에 비유했다. 이 사회는 거대한 병원이고 누구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곳이며, 하늘은 뚜껑 같아서 우리에 갇혀 있는 존재인 자신은 세상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절망한 보들레르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을 직시하며 무수히 모양을 바꾸는 자연의 건축가인 구름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구름의 이미지는 무한한 바다 위에 가물거리며 떠가는 배의 이미지와 중첩되기도 한다. “제 아무리 웅장한 풍경도, 우연이 구름과 함께 만들어 내는 저 신비한 매력에는 미치지 못했다”(‘여행’)며, 환상적이며 빛나는 형태의 구름의 움직임을 많이 표현했다.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한 시인은 늙은이들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며 인간의 추한 모습에서 도리어 아름다움을 찾아내려 했다. 인공적인 것에서 몽상과 미학을 발견해낸 것이다. 보들레르는 소설이며 미술평론, 연극대본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에드거 앨런 포(1809~1849)의 소설도 번역했다. 1852년 포의 작품을 접한 보들레르는 포의 글을 보고 신선하고 신비로워서 그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했는데,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보들레르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예술지상주의를 거부했다. 형식의 절제와 엄격성을 수반하지 않은 감정의 분출을 용납하지 않았는데 포도 그랬다. 그는 포의 작품과 문학정신에 끌렸다. 보들레르는 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포는 만난 적도 없는 영국의 작가이지만 보들레르에게 생각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보들레르는 자신이 꿈꾼 주제 뿐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문장들을 20년 앞서 이미 포가 써놓아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포에게 진한 형제애를 느꼈다고 한다.

보들레르는 명성에 관해서도 “일찍이 벼락같이 떨쳐진 명성이 있는지 보라, 이는 번번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이전의 여러 성공의 결과”라고 했다. 진정한 예술인은 무엇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포의 글에도 동일한 의미가 담겨 있어 보들레르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 기뻤다고 한다. 그는 “문학에서 번뜩이는 영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매일 끈질긴 작업을 통해서만 대향연에 이를 수 있다”며 노력과 습작을 중시했다. 사실 보들레르나 에드거 앨런 포는 생전에 무척 불행했다. 그들은 살아서 작가로서 인정을 받기보다 사후에 인정을 받았다.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천재 작가라는 말을 듣고 있다. 보들레르와 포는 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의 씨앗을 선물하고 떠났다. 특히 보들레르는 상징주의의 문을 열어주었다.

보들레르는 미술평에도 뛰어났다. 색채를 조화로운 멜로디에 비유했다. 나름의 체계적인 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 그는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을 자주 방문해 한 작품 한 작품 마음에 새기며 감상하다 보니 작품의 서로 다른 점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어린 보들레르에게 미술에 조예가 깊었던 아버지는 형태와 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영향 때문인지 그는 미술 비평에서 작품의 주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작품의 구성, 배치, 빛과 어둠의 분배 등 기술적인 완성도를 언급했다. 그는 자연의 색채에는 음악적인 가락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림은 음악에서의 청각의 역할처럼 시각이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울림을 주고 신비스러움을 불러오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 화가들에게는 대부분 멜로디가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그림이 선율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주제나 선들을 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서 그림을 바라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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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굶주림에 허덕여도 글을 쓰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창작만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글쓰기에는 그만의 내적인 질서가 있었다. 안일함에 대한 거부였으며 완벽을 향한 집착이었다. 파리 산책이나 저녁 외출로 오후 시간을 흘려보냈을 때는 채워져 있지 않은 원고들을 보며 회한에 잠겨 시간을 허비해 버린 것을 자책했다고 한다. 그를 깊이 들여다보니 초라하고 연약하고 병약한 한 시인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시에 대한 열정과 문학 정신만은 끝내 잃지 않았다. 보들레르에게 구름은 지상의 답답함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대체물이었던 것 같다.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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