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양자물리학’ 박해수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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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7   |  발행일 2019-09-27 제43면   |  수정 2019-09-27
‘과묵’ 벗고 ‘능글’로 변신…생각이 현실을 만드는 양자물리학 법칙에 빠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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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학’의 찬우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 중학교 중퇴 학력의 그가 죽어가는 술집도 살린다는 ‘유흥계의 화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라는 양자물리학적 신념을 인생의 모토로 삼으면서다. 박해수는 첫 상업영화 주연작인 ‘양자물리학’의 찬우를 통해 숱한 위기를 긍정적으로 헤쳐 나가는 그의 유쾌한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슬플 때 웃는 자가 일류’라는 말처럼 세상은 고정되지 않고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말이다. 이는 극중 찬우의 인생 철학이자, 가치관인 동시에 그를 연기하는 박해수의 마음이기도 했다. 영화는 유명 연예인의 마약 사건에 검찰과 정치계가 연결된 사실을 알게 된 찬우가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이들 썩은 권력과 한판 대결을 펼치는 과정을 리드미컬하게 담아간다. 박해수는 이 과정을 “파동이 맞는 사람들끼리 거대한 에너지 장이 형성되어 양자물리학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라며 나름의 재미난 해석과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보다 궁금한 건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보여준 과묵한 모습과는 상반된 거침없는 입담과 능글맞은 매력의 찬우 캐릭터로 돌아온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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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학’은 제목과 달리 범죄오락을 다룬 영화다. 이야기 역시 매번 반전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많은 분이 그 부분을 좋게 봐주셨다. 단순한 범죄오락물만이 아닌 인물들의 가치관과 철학, 또 관계성에서 나오는 믿음과 용기에 대한 부분이 많이 느껴져 좋았다는 평가다. 사실 우리 영화가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인지도는 없는 편이다. 하지만 흥미롭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이야기, 배우들간의 호흡이 좋았다는 점은 강점으로 말하고 싶다. 그 점에서는 구멍이 없는 영화라고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기존 상업영화에서 조연의 위치에 머물렀던 찬우와 같은 유흥업 종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첫 느낌이 ‘와! 감독님이 뒤도 안돌아보고 달려가시려나보다’였다. 실마리는 물론 기술적인 반전없이 정말 순수하게 직진한다고 생각했다. 캐릭터보다 시나리오가 먼저 마음에 확 들어왔던 이유다. 사실 유흥업 종사자는 쉽게 주인공으로 나오기 힘든 직업군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속성이나 찬우가 지닌 인물의 성향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도 그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다. 직업이야 환경일 따름이니, 찬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좀더 고민하면서 접근했다.”

▶감독과는 첫 만남부터 파동이 느껴졌다고 말했는데.

“신기한 게 시나리오를 받기 몇 달 전부터 양자물리학에 대한 개인적인 긍금증이 생겨 한창 신나게 파 본 적이 있다. 워낙 미스터리를 좋아해서 공부를 좀 했는데 양자물리학은 과학과 철학이 함께 느껴지는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그 부분을 감독님에게 말씀 드렸더니 반색하셨다. 아마도 내가 가는 방향이 찬우가 가는 방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감독님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나를 캐스팅하려고 했던 것과 내가 평소 양자물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게 분명 단순한 만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파동이 느껴졌다.”

▶찬우는 양자물리학 법칙을 삶의 모토로 삼는 인물이다. 그가 왜, 언제부터 양자물리학에 꽂히게 됐다고 생각했나.

“그 부분이 나에게도 숙제였다. 그 지점이 명확히 나와야 그가 양자물리학에 가치관을 두고 늘 주문을 외우고 다닌다는 설득력이 생긴다. 찬우는 자기 집과 가족을 갖고 싶을 것이라는 점에 먼저 포인트를 줬다. 그에게 집은 ‘MCMC’라는 클럽이고, 가족은 동고동락한 동료들이다. 극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중학교를 중퇴한 그가 양자물리학을 공부한 건 그게 공을 덜 들이고 유식해 보일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양자물리학에 대해 잘 모르지 않나. 또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이 찬우의 욕망과 연관되어 있는 것도 같고.”


유명연예인 마약사건과 연결된 검찰·정치 권력
유흥업 종사자가 지인들과 의기투합, 한판 대결

평소 양자물리학 관심, 감독과 첫 만남부터 파동
힘과 용기 주는 찬우 캐릭터 관객에 알리고 싶어

드라마‘슬기로운 감빵…’제혁과 실제 성격 비슷
늦게 데뷔, 결과 연연하기보다 마음 잡는게 중요
오래 몸담은 연극무대, 생명력 얻는 원천·에너지



▶찬우의 삶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나.

“찬우만큼 고통과 고난을 겪진 않았지만,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일에 회의감이 들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그 점에서 오히려 찬우에게 배우고 싶은 게 많았다. 전부터 배역을 맡더라도 찬우같이 멋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었는데 이제야 만났다. 이 멋진 친구를 관객들에게 빨리 소개해 주고 싶었고, 그가 모두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 주길 바랐다. 충분히 그런 능력을 갖춘 친구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의 과묵한 모습이 당신의 진짜 모습같다고 생각했는데, 찬우의 모습에서도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실제로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원래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제혁이 같은 성격이다. 특히 제혁이와 싱크로율이 높았던 건 신원호 감독님과 작가님들이 나와 오랜시간 미팅을 하고 리딩을 하면서 제혁 캐릭터에 계속 변화를 줬기 때문이다. 내 모습, 말투, 몸짓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제혁에게 녹여냈다. 물론 찬우 또한 일정부분 나의 모습이 녹아 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찬우는 내가 동경하는 부분이 많다. 아무래도 극화된 인물이다보니 좀더 저돌적이다.”

▶시나리오를 볼 때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보는 편인가.

“여러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그림을 감상할 때도 비올 때 보는 것과 맑은 날 보는 느낌이 다르고, 스페인에서 볼 때와 인사동에서 볼 때의 느낌이 다르다. 대본도 어디에서 읽고 어떤 환경인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만약 내가 만나고 싶은 시기에 봤다면 그 시나리오는 무조건 좋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이 작품이 나를 원해서 이렇게 찾아 왔구나’라면서. 작품의 구성까지 깊이 있게 파악하는 건 아직 잘 모르겠고 인물이 살아있다고 느껴지면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전작의 흥행으로 이후 더 좋은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야겠다는 조바심도 생겼을 것 같은데.

“내가 데뷔를 늦게 한 편이라 그런 조바심은 딱히 없다. 사실 잘된 결과나 인기는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순간순간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서 내가 방황하거나 혼란스러워할 때마다 ‘걱정하지마, 넌 잘 가고 있어’라며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조바심을 내거나 걱정을 한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지 않나.”

▶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배우에 대한 꿈을 처음부터 꾼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이 쪽 길로 왔는데 ‘내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연기에 집중하게 됐다. 연기에 처음 눈을 뜬 건 고등학교 때 연극부에 들어가면서다. 그 때는 좀 감성적이었고 젊은 혈기에 뭔가 분출하고 싶은 에너지가 충만해 있는 상태였다. 나는 연극부를 에너지를 분출하는 통로로 생각했다. 그 와중에 ‘연극이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그때까지도 연기를 분출의 욕구로만 생각했지 연기로 누굴 위로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차츰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건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면서다.”

▶오랜시간 연극 무대에 몸 담아 왔다. 당신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인가.

“힘과 생명력을 얻는 원천이다.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되게 힘든 고난의 시간이지만 막상 무대에 서면 그간의 고생이 순식간에 다 사라진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호흡하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받는 에너지가 있다. 그 공간에서만 느껴지는 에너지인데 그런 것들이 나에게 동력으로 작용한다. 연극을 끝내고 집에 가면 불면증없이 잠을 푹 잔다. 무대에서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다시 에너지를 재수혈 받는 느낌이다.”

▶찬우는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말을 늘 주문처럼 되풀이한다. 평소 그와 비슷한 주문을 하는 게 있나.

“특별히 주문이 있는 건 아니고 내가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좋은 작품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다. 좋은 작품이란 꼭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깊은 감명을 받고 인생을 다시 되돌아보거나 바꿀 수 있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다. 연극을 하면서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현실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통해 박해수의 어떤 점을 관객들이 봐줬으면 좋겠나.

“‘이 친구가 이런 모습도 있었네, 진지하게 캐릭터를 연구해서 만드는 걸 보니 앞으로 기대해도 되겠네’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사실 그 부분을 의도해 변화를 준 건 아니지만 이 영화가 나에 대한 궁금증을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물론 아직 미천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일어서서 힘들게 균형을 잡고 있는 수준이다.”

▶차기작은.

“임필성 감독님의 넷플릭스 영화 ‘페르소나’ 중 단편 ‘썩지 않게 아주 오래’와 윤성현 감독님의 영화 ‘사냥의 시간’(가제)을 찍었고, 지금은 이희준 형님, 수현씨와 함께 드라마 ‘키마이라’를 촬영하고 있다. 형사 역할인데 좀 특이한 인물이다. 패셔너블하면서 유쾌하고 섬세한, 아마도 기존 형사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주>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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