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반일 종족주의’의 궤변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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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30   |  발행일 2019-09-30 제30면   |  수정 2020-09-08
일본군 종군위안부들에게
역사상 유례없는 패륜에도
영업·매춘으로 진실 호도
마치 실증적 근거가 있는양
저자들 교묘한 언술 늘어놔
[아침을 열며] ‘반일 종족주의’의 궤변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최근 연세대 류석춘 교수가 수업 시간에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강변하다가 몰매를 맞고 있다. 그는 항의성 질문을 하는 여학생에게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고 조롱해서 성희롱 혐의까지 받고 있다. 연세대 총학과 민주동문회는 류석춘을 파면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류석춘의 주장은 실은 본인의 주장이 아니고 이영훈 교수 등이 쓴 ‘반일 종족주의’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영훈의 서술에는 ‘매춘’이란 단어가 없을 뿐, 글의 앞뒤 문맥을 보면 매춘과 다를 바 없다. 조선 시대의 기생, 근대의 공창과 사창, 미군부대 양공주 등을 분석하면서 일본군 종군위안부도 그런 역사적 연장선상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영훈의 종군위안부 해석은 해괴하다. 이들은 강제로 끌려간 게 아니다, 생활이 부자유스럽지도 않았다, 더러 일본군과 사랑도 했다,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었다 등 망측한 주장을 거듭한다. 큰돈을 벌었다는 증거로 대구 출신 문옥주의 예를 드는데, 이는 동남아의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몰라서 발생한 오류로 실은 푼돈에 불과했다. 이영훈은 종군위안부들을 가리켜 ‘개인의 영업’ ‘전쟁 특수를 이용해서 한 몫의 인생을 개척했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류석춘이 말한 매춘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이영훈, 류석춘에게 물어보자. 일본군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패륜을 저질렀다. 침략하는 곳마다 대량 강간은 기본이었고, 평소에도 군부대 옆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조직적·체계적으로 대규모 성폭행을 저질렀다. 일본군이 군부대 근처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민간업자들을 동원해 아시아의 어린 여자애들을 속여서 끌어모아 가둬 놓고, 도망가면 두들겨 패거나 죽였다. 이들은 하루에 수십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고,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날마다 부모형제를 그리며 눈물 흘렸다. 그런데도 영업이니, 매춘이니 그런 말이 나오는가. 네 누이가 그리 됐어도 그런 말을 할텐가.

나는 철학자 존 롤즈가 쓴 ‘정의론’에 나오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의 상태를 개선해주는 것이 정의”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이 세상에서 제일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면 일본군 종군위안부일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돈을 벌었고, 자유로웠다고? 진실을 호도하고 흑을 백이라 해도 분수가 있지, 이영훈·류석춘의 주장은 궤변 중의 궤변이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들은 마치 실증적 근거가 있는 양 교묘한 언술을 늘어놓지만 자기들에게 유리한 일부 근거만 갖다 쓰고 불리한 증거에는 눈을 감는다. 실증을 좋아하는데 상식이 없다.

사실 이 책의 전체 논조가 그렇다. 이영훈은 독도가 우리 땅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몇가지 증거를 들지만 1877년 일본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이 울릉도,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 일제시대에 큰 경제성장이 있었다는 숫자를 갖다 대지만 그 성장이 누구의 성장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조선의 농지와 광공업 자본을 대거 장악한 일본인의 경제성장이었지 조선인의 성장은 아니었다.

이 책의 일본 번역이 곧 나온다는데, 그러면 일본의 극우 군국주의자들이 만세를 부르겠구나. 이 책의 주장대로 일본 식민지 덕분에 우리나라가 발전했고, 별로 피해도 없었고 강제도 없었다면 독립운동가들은 바보짓을 한 것인가.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우긴다. 본인들은 열심히 사료를 연구했고, 한국 학자들은 연구도 안 하고 거짓 주장만 한다고. 한국의 국민, 정치인, 학자들은 거짓말을 일삼는다고. 어찌 이들 눈에는 한국인의 잘못만 크게 보이고, 일본인의 잘못은 안 보이는지. 이들에게 이들의 스승 안병직 교수가 즐겨 인용하던 맹자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내가 스스로를 업신여긴 다음에야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긴다(人必自侮然後人侮之).”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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