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힘을 내요, 부상자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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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3   |  발행일 2019-10-03 제27면   |  수정 201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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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주말섹션부장

지난 추석연휴 대구를 배경으로 한 차승원 주연의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리’를 가족과 함께 봤다.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한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참사를 다룬 영화였지만 코미디를 가미해 무겁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중간중간 소개된 중앙로역 화재 현장의 모습은 당시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는 첫째(2004년생)와 둘째(2006년생)가 태어나기 전인 2003년 2월18일에 발생했다. 궁금해서 영화가 끝난 뒤 중3인 딸과 중1인 아들에게 물었다. “영화에 나온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를 아느냐”고. 둘 다 학교 수업시간에 들어서 안다고는 했지만, 사고가 대구에서 발생했다는 막연한 느낌뿐인 듯 했다. 300명이 넘는 대구시민이 숨지거나 다친 이 화재와 관련이 있는 가까운 친인척이 없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 영화가 큰 흥행을 하진 못했지만 110만 관객이 본 영화임에도 9월11일 개봉 이후 주 소재가 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와 관련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화재 당시 많은 생명을 구한 뒤 아내까지 잃은 영화 속 주인공 철수(차승원 분)의 직업인 소방관에 대한 관심만이 조명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소방관들의 고충에 대한 관심이 새삼 주목받으면서 국회에 계류중인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위한 소방기본법, 소방공무원법 등 6개 법률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를 연출한 이계벽 감독도 “그 당시 (참사 현장에 있었던) 소방관들을 만나면서 ‘영화를 안 만들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상처가 깊고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계신 것을 알고 난 뒤에는 다시 뒤돌아볼 수 없었다. 그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진솔하고 자세히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영화제작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아쉬운 점은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당시 소방관뿐 아니라 수많은 대구시민들이 부상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아직도 고통받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이 대구에서조차 없다는 것이다.

소방관 1명을 포함해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당시 151명이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중 11명은 이미 후유증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올들어서만 6월에 한꺼번에 3명이나 숨졌다. 암으로 수술 후 투병중인 부상자도 두 명이나 된다. 유독가스는 한 번 폐에 들어가면 쉽게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화재참사 이후 병원에만 있다가 숨진 부상자도 있다. 당시 50대 초반의 한 여성 부상자는 정신분열증세를 보여 ‘미친사람’ 취급을 받다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살아 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사고 당시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부상자들은 후유증으로 숨져도 장례비조차 지원받지 못한다. 올해 숨진 부상자 중 한 명은 장례비용도 없어 나머지 부상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겨우 장례를 치렀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구시는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부상자 장례비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 작업에 들어갔다. 화재참사 발생 16년 만이다. 부상자들이 지금까지 받은 보상금과 지원금은 1인당 평균 9천만원 정도다. 후유장애 정도에 따라 차등 지원됐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부상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당시 고3이었던 한 여학생은 사고 이후 학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원하는 대학진학에 실패한 뒤 올해까지 무려 6번이나 삶을 포기하려고 했다. 30대 후반이던 한 여성은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해 16년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40대 초반이던 한 남성은 그날 이후 정신병원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화재참사 희생자 192명의 이름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안전상징 조형물에 새겨져 있지만, 부상을 당해 고통을 받다가 세상을 떠난 이들은 희생자가 아니기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다. 처절했던 참사 당시를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예우가 제2, 제3의 화재참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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