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준의 정원 인문학] 인류 문명 발생과 정원 - 고대 이집트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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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4   |  발행일 2019-10-04 제39면   |  수정 2020-09-08
죽음의 사막 건너 흐르는 ‘나일강’의 푸른 생명
인류 문명 발생과 정원 - 고대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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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변 녹지와 사막. <출처: Scott Edmu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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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문의 정원(BC 1380), 테베의 고분벽화. <대영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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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의 정원을 프랑스 고고학자 조루주 페로가 재현한 조감도(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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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의 정원을 이집트 학자 아폴리토 로젤리니가 재현한 그림(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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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는 그들 최초의 정원을 사막에 창조하였다. 기원전 약 3000년, 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 나일강 유역, 그리고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 사냥과 채집으로 생존하던 인류는 큰 강을 기반으로 농사를 시작하고, 생존의 기본 조건이 충족된 이곳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시를 이루고 역사와 문화의 첫 장을 쓰기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불모의 땅에 인류 문명의 발상과 함께 정원문화가 싹을 틔운 것이다.

매년 범람하는 나일강과 비옥한 토양
불모의 땅에서 받은 선물과 같은 존재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부활
자연에서 일깨운 균형미에 대한 감각
직사각 연못·바둑판처럼 줄맞춘 나무
이상향의 재현·영혼의 안식처‘정원’
산자·죽은자·神을 위해 심은 무화과



나일강은 지금도, 그리고 5천년 전에도 이집트인에게 선물과 같은 존재다. 정확한 주기에 따라 물이 넘치고 빠졌던 나일강이 만들어내는 비옥한 토양은 농사를 짓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들에게 푸른 나일강변은 오아시스였고, 강변 양쪽의 제방을 넘어 끝없이 펼쳐지는 불모의 사막은 죽음의 땅이었다. 다신교 사회인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Ra)와 풍요와 부활의 신 오시리스(Osiris)를 가장 높이 숭상하였다. 농사를 막 짓기 시작한 그들에게 에너지의 원천이자, 한눈을 팔면 애써 가꾼 작물을 저 너머 땅처럼 바싹 말려버리는 태양은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태양이 지면 죽음의 시간이 찾아오지만,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태양신은 생명의 원천을 허락한다. 매년 여름 정확히 찾아오는 나일강의 홍수는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지만, 홍수가 지나간 자리에 농부들이 씨앗을 뿌려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남쪽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생명의 강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는 제방 주변으로 생명의 푸른 경작지가, 그 너머에는 죽음의 사막이 펼쳐진다.

매년 정확히 반복되는 생과 사의 생활사와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적인 자연환경은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균형미에 대한 감각을 제공함과 동시에 죽음은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생명, 부활해 오히려 지금보다 더 풍요로움이 약속된 사후세계로 가는 준비 단계로 인식되게 하였다. 언젠가 육체와 영혼이 다시 결합하면 재생된다고 믿었기에 그들은 부활을 기다리는 집, 영원한 집의 건축에 큰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 영혼이 다시 돌아올 시체를 미라로 보관하였다. 북쪽에는 지중해, 남쪽으로는 높은 산맥들, 동쪽의 홍해와 서쪽의 사하라 사막은 오랫동안 이집트를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였고, 이러한 안정된 환경은 그들 특유의 문화가 꾸준히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일강 주변으로 도시가 건설되면서 정원도 함께 만들어졌다. 이집트인이 초기에 만든 정원은 단지 집을 꾸미거나 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건조한 사막지대에 한정된 자원을 나눠야 하는 고대 이집트 도시 사람들에게 정원은 식량 조달의 창고였다. 정원에는 포도주·과실·채소, 그리고 연못가에는 종이로 쓰이는 파피루스가 생산되었다. 사막의 모래와 매년 되풀이되는 나일강의 범람, 침입자를 막을 수 있도록 정원에는 높다란 담벼락이 세워졌다. 그들의 그림과 건축, 조각에서 그랬던 것처럼 높게 세운 담벼락 안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연이 그들의 본능 속에 각인시킨 대칭과 균형에 대한 감각을 동원하여 탑문을 중심으로 정원을 완전한 대칭으로 조성하였다. 직사각형 연못과 규칙적으로 줄을 맞춰 심은 나무들은 바둑판처럼 단순하고 정연하게 자리 잡아 이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사실 수목을 열을 지어 심음으로써 한정된 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도 있었다. 이제는 풍요로운 나일강 변의 이상향의 경관을 신을 위한, 그리고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나를 위한 공간에 창조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이러한 정원 형태는 수 세기 동안 여러 문화권에서 각각의 이상향을 지상에 재현하는 과정에서 모델이 되어왔다.

이집트인들은 현세에서 완성하여 누리던 것은 내세의 영혼에도 위안을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삶의 공간 주변에 이상향의 재현이자 영혼의 안식처인 정원을 가능한 한 많이 가지고 싶어 했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생전에 좋아하던 정원의 중심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즉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영을 달래기 위해 생전에 좋아하던 정원의 중심에서 장례가 치러진 것이다. 묘에는 매우 정교한 미니어처 정원 모형을 넣어주거나, 내세의 정원을 벽화로 그려 넣기도 하였다. 이러한 고분벽화에는 실제 정원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내세의 삶에서 긴 여행을 해야 하는 사자(死者)의 영혼을 위해 활력의 상징으로서 과일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나무가 있는 정원을 그려주기도 하였다.

현재 온전하게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 정원 유적은 찾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부활을 기다리던 영원한 집, 무덤의 벽화는 지금까지 남아 옛 정원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그중 하나가 테베(Thebes)에 있는 아메노피스 3세(BC 1410~1372)의 중신의 묘에서 발견된 ‘아문의 정원’ 벽화이다. 정원은 거의 정확히 좌우, 아래위로 대칭적으로 조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정원 가운데에는 뜨거운 태양을 가려 그늘을 제공하고 신을 기리는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한 포도 시렁이 늘어져 있다. 오리가 한가로이 떠다니는 직사각형의 연못에는 연꽃과 함께 가장자리에는 파피루스가 심겨져 있다. 연못을 바라보며 청명한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우리의 정자와 같은 키오스크(Kiosk)가 세워져 있고 담벼락을 따라 무화과, 대추야자, 종려와 같은 녹음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수목들이 열을 지어 식재되어 있다.

또 하나의 벽화는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신왕국 제18왕조 투트모세 4세(BC 1397~1388) 시대에 조성된 무덤에서 볼 수 있다. 내세의 정원을 묘사했다 하여 서천 정원(West garden)이라고도 불리는 이 정원은 당시 정원에 심어졌던 식물의 종류와 모습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다. 물고기와 오리, 파피루스와 연꽃의 생명이 가득한 네모난 연못 주변으로 돌무화과(Sycamore), 무화과, 대추야자, 둠야자 등이 질서정연하게 심겨져 있다. 정원에 그늘을 만들어주거나 열매를 제공하는 등 수많은 용도로 쓰였던 식물들은 종교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에게 푸른 식물은 열사의 사막에 대비되는 생명 그 자체였다. 풍요와 부활의 신 오시리스가 녹색의 피부를 지닌 것도 이러한 관념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돌무화과는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에게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안식을 준다 하여 신성시하였다. 벽화의 우측 상단에 돌무화과 나무 아래에 하늘의 여신이자 죽은 자의 수호신인 오시리스의 어머니 누트(Nut)가 무덤 주인에게 과일을 나눠 주며 환영하고 있는 모습에서 풍요로운 내세에 대한 무덤 주인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무화과는 이집트 정원에 없어서는 안 될 나무로, 야자나무와 석류나무같이 열매를 풍성하게 맺거나 씨앗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무를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하여 풍부한 인력이 재산인 농업사회 고대 이집트에서 이를 신성시하여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신을 위한 정원에 심어졌다. 고대 이집트 특유의 환경과 생활방식에서 습득된 자연관과 균형미, 그리고 그들의 이상향에서의 영원한 삶에 대한 갈구는 앞으로 펼쳐질 서양 정원의 원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계명대 생태조경학과 교수 hj.jung@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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