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조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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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4   |  발행일 2019-10-04 제42면   |  수정 2019-10-04
웃음 주려고 태어난 코미디언, 희대의 악당으로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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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노모를 부양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꾼다. 비록 지금은 광대 분장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달하지만 “넌 웃음을 주려고 세상에 태어났다”는 어머니의 말을 늘 가슴 깊이 새긴다. 사실 아서는 기분에 상관없이 웃는 병을 앓고 있다. 쉽게 자제할 수 없는 그 웃음 때문에 종종 오해를 낳고,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그저 남들을 웃게 만들고 싶고, 함께 어울려 살고 싶었을 뿐인데. 아서의 진실된 마음과 노력이 반복적인 멸시와 무관심으로 돌아오고, 임계점에 이르자 마침내 폭발한다. 연민과 공감의 결여, 예의 없는 고담시의 유해한 환경이 그를 파멸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올해 제76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커’는 배트맨의 숙적이자 희대의 악당인 조커의 탄생을 그렸다. 코믹북 기반이 아닌 영화를 위해 완전히 재창조된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는 분열된 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서의 불안정한 모습을 어른들의 비정한 우화처럼 담는다. 누구라도 저런 상황에선 악의 씨앗이 잉태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려는 듯 영화가 견지하고 있는 분위기는 시종 음울하고 황량하고 스산하다.


‘웃는병’걸려 힘들게 살지만 어울려 살고 싶은 꿈
진실된 마음 불구 멸시·무관심, 파멸의 길 빠져



그렇게 1980년대 고담시는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척박하고 암울한 묵시론적 도시가 됐다. 거리 곳곳은 쓰레기와 슈퍼 쥐 떼로 몸살을 앓고 있고, 빈부의 격차가 더욱 심화되면서 시민들의 표정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영화는 그 중심에서 “삶이 코미디 그 자체”였던 아서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내면과 그를 둘러싼 불안정한 사회 구조 문제를 다각도로 짚어 간다. 웃음이 거세된 대부분의 시민들과 달리 시도때도 없이 웃는 아서는 자신이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임을 역설적으로 항변한다.

‘조커’는 화려한 CG와 액션을 자랑하는 슈퍼히어로물이 아니다. 배트맨의 숙적으로서가 아닌, 평범한 코미디언 아서가 수많은 고통과 좌절을 겪은 뒤 희대의 악당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렸다.

따라서 ‘조커’는 그의 범죄 행위를 따라가는 스릴러이자 광대의 내면을 심도 있게 다룬 드라마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로 탄생했지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 세계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는 분명 곱씹을 만하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압권이다. 어떤 장르의 영화와 캐릭터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였지만 이번의 연기는 영화사에 회자될 만하다. 아서의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 즉흥 연기와 시그니처 같은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장르:스릴러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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