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광화문 국민’과 ‘서초동 국민’ 따로 있나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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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7   |  발행일 2019-10-07 제30면   |  수정 2019-10-07
광화문에선 정권규탄집회
서초동에선 검찰개혁시위
조국 놓고 또 쪼개진 국민
편가르기가 만성화됐는데
文, 듣고싶은 함성만 들어
20191007

영남일보 서울본부는 광화문 대로변의 한국프레스센터 11층에 있다. 북쪽 큰 창을 통해 북악산~청와대~경복궁이 멀리 보인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 광화문광장, 그리고 광장 양쪽의 왕복 12차선 도로는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 창으로 고개를 돌리면 시청광장 어귀까지도 보인다. 광화문 일대에 구름 인파가 운집하면 언론사에서 드론을 띄우거나 인근 건물 옥상에 올라가 찍은 사진을 내보내는 그 장소와 일치한다. 필자는 이곳에서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2008년), 고(故)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제와 장례행렬(2009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식 미사 집전(2014년),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의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 모인 인파를 내려다 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느 정도의 인파가 모였는지를 놓고는 셈법이 제각각이다. 필자의 눈을 기준하면 광화문 일대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을 때는 촛불집회가 절정에 달했던 2016년 말이었다.

3년 가까이만에 2016년 말이 떠오를 정도로 엄청난 사람들이 모인 광경을 봤다. 개천절(10월3일)에 ‘조국 퇴진’을 구호로 문재인정권을 규탄하며 열린 집회였다. 주로 광화문 일대의 넓은 차로는 각종 단체의 깃발을 든 사람들이, 양쪽 인도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나온 사람들이 빼곡히 채운 장면도 비슷했다. 3년 전 최순실을 성토하며 ‘박근혜 하야’ ‘박근혜 탄핵’을 외쳤는데, 이번엔 조국을 성토하며 간헐적으로 ‘문재인 하야’ ‘문재인 탄핵’ 구호가 나왔다. 그때와 지금 모두 집회의 끝은 청와대로의 행진이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 물러나라고 외치는 함성을 지척인 청와대에서 매일 들으며 크게 괴로워했을 거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방송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박근혜처럼) 광화문광장에서 퇴진 요구가 나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광장에 나가서 시민들 앞에 서겠다. 끝장 토론이라도 해서 설득하겠다”였다.

10월3일은 개천절 공휴일이었으니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었을 텐데, 광장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페이스북에 태풍과 돼지열병에 철저히 대처하라고 당부하는 글을 올렸다. 민생을 챙기는 모습이지만 야당도 참여한 광화문 집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거나 마찬가지다. 청와대 참모들 역시 2016년 촛불에 맞먹는 인파가 모여 정권퇴진을 외쳤음에도 침묵했다. 앞서 2월28일 토요일에 ‘검찰개혁’을 구호로 조국 구하기에 나선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인근 집회 때는 달랐다. 청와대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일시에 모였다는 건 굉장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고 검찰개혁의 열망이 높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조국 법무장관의 업무보고 자리를 부랴부랴 마련해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서초동 집회를 평가했다.

서초동 집회는 주말인 5일에도 대대적으로 열렸다. 이에 맞서 광화문 집회 세력은 한글날(10월9일)을 벼르고 있다. 반(反)문재인 세력이 주도권을 잡은 광화문에선 친(親)문재인 세력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맞불집회를 연다. 서초동에선 그 반대다. 국민은 또 둘로 쪼개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통령이 또 국민을 둘로 쪼갰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소위 적폐청산작업,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통해 국민을 갈라치더니 ‘조국’ 하나를 지키려고 ‘광화문 국민’과 ‘서초동 국민’으로 편을 갈랐다. 아니, 광화문 인파를 국민으로 치는지도 모르겠다. 광화문의 소리는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서초동 소리만 듣는다. 이쯤되면 ‘조국 사태’가 아니라 ‘문재인 사태’다.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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