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때론 져주는 것도 필요하다

  • 장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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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8   |  발행일 2019-10-08 제30면   |  수정 2019-10-08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 행사
상대방에 고소·고발 일삼은
여야 정치인들의 자승자박
제발 국회서 제대로 일하고
어른스러운 정치를 펼쳐야
[화요진단] 때론 져주는 것도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면 조국하고 윤석열 때문에 머리가 아플 것이다.” 문 대통령 당선자시절 이처럼 예측했다가 지인들로부터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2년반이 지난 지금 그 예측이 거의 맞아 떨어졌다.

작금의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결은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다. 혹자는 기호지세(騎虎之勢)여서 누구 하나 성한 몸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뼈와 뼈가 부딪치는 UFC타이틀전을 방불케 한다. 두 선수를 공포의 케이지에 밀어넣은 이는 문 대통령이다. 황제가 총애하는 왕자 두명에게 같은 임무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못한다고 했는데 형제간이야 오죽하겠는가.

조 장관은 일찌감치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간택돼 집권초기 민정수석에 이어,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길만 남았던 터였다. 형법학자로서 뜻한 바를 펼칠 것이라고도 했다. 윤 총장은 어떤가. 박근혜 특검 수사팀장에 이어, 이 정권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과거 고검장이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으며, 적폐 수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검찰총장으로 파격발탁됐다. 과거 여주지청장 시절 국회청문회장에서 직속상관이었던 서울중앙지검장 면전에서 국정원수사 외압설을 폭로하고 “조직에 충성할 뿐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던 인물이 아닌가. 조 장관이 임명되자마자 주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분란(?)이 일고 있다.

주말마다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일대가 ‘조국 수호’와 ‘조국 아웃’이라는 집회로 혼란스럽다. 검찰은 조 장관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와중에 문 대통령이 나서서 검찰에 개혁을 주문하고, 검찰은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는 모양새다. 여야 할 것 없이 다들 국민을 볼모로 세(勢)대결을 벌이는 형국이다. 국민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이런 상황을 국민들이 즐겨야 하는 게 아닐까. 위대한 모든 발명에는 실패와 실수투성이의 역사가 숨어 있다. 조 장관에 대한 의혹수사가 없었다면 입시비리의 실상이나 사모펀드비리 등이 불거질 일도 없을 것이고, 검찰개혁의 추동력조차 잃을 뻔 했으니 말이다. 당사자들이야 치명상을 입겠지만 그건 임명권자의 소관일 뿐 국민이 걱정할 일은 아니다. 어찌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목도한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 완성을 위해 조·윤카드를 내민 용인술이 돋보인다. 후일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에겐 잘된 일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번엔 검찰개혁에 관한 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행정부 내 법무부 산하 외청에 불과한 대검찰청이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된 것은 정치권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7월 윤 총장 임명 당시 보수진영에선 잘못된 인사라며 난리를 쳤다. 반기던 여당은 조 장관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시작되자 태도를 바꿔 막말을 써가면서 윤 총장을 비난했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여야 할 것 없이 조그만 꼬투리라도 잡으면 어린애마냥 검찰에 쪼르르 달려가서 상대방에 대해 고소·고발을 일삼았다. 이러니 검찰이 정치인들을 얼마나 우습게 봤겠는가.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이 대목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자유한국당의 미래다. 혁신위원장을 지낸 류석춘 연세대 교수의 망발 등에다 의원들의 삭발릴레이는 4년전 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였던 행태와 데자뷔된다. 180석을 장담하면서 서로 공천권을 쥐려고 ‘옥새들고 나르샤’를 한 것도 모자라 진박감별사가 등장해 허구한 날 ‘박(朴)터지는 소리’가 나도록 싸우다가 날샜다. 여당의 자살골이나 에이스투수의 폭투로 득점하는 것외엔 별반 나아진 게 없다. 국회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 지정을 둘러싼 충돌로 국회의원 59명이 고소·고발돼 검찰의 기소여부와 법원의 판단에 생사가 걸려있으니 조국정국 이후가 암울하다.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탄식도 나온다. ‘소’는 국민들이 키울테니 제발 국회에서 제 할 일을 해라. 못이기는 척 져주기도 하고, 협치도 해라. 언제까지 정치 모리배(謀利輩)라는 소리를 들을텐가. 어른스러운 정치가 아쉽다.

장용택 교육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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