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과도한 외래어 사용…낯부끄러운 한글날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구글플러스
  • 기사내보내기
  • 서민지기자 정우태기자
  • 2019-10-09
  •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샤프 쏘 심플 워터프루프 펜슬 라이너’가 뭘까요…

화장품 가게 제품들 英단어 남발

서점 패션잡지는 뜻모를 말 향연

커피점 생소한 메뉴 글에 당황도

시민들 “우리말로 순화해 썼으면”

8일 찾은 대구 동성로의 화장품 가게들은 외래어 범벅이었다. ‘샤프 쏘 심플 워터프루프 펜슬 라이너(날카로운 연필형 방수 아이라이너)’ 등 영어 단어를 과하게 나열한 제품이 있는가 하면, ‘리페어 리프팅 크림·앰플 쿠션(피부 탄력 크림·고농축 영양 쿠션)의 놀라운 효과’ ‘나인투나인 서바이벌 컬러카라(번지지 않는 컬러 마스카라)’ 등 이해하기 힘든 홍보 문구도 보인다. 제주나 한라봉 콘셉트의 제품도 한글 대신 ‘Jeju’‘Hallabong’ 등으로 표기한 상품도 눈에 띄었다.

대형서점 패션 잡지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이제 퍼스널라이즈드 크림을 찾아야 한다(이제 개인 맞춤형 크림을 찾아야 한다)” “핀 컬러를 실버로 통일해 리얼 웨이에서 활용해도 문제없다. 앙고라 소재의 흰색 풀오버나 목가적인 레이스 드레스와 매치해도 좋겠다(핀 색깔을 은색으로 통일해 일상 생활에서 활용해도 문제없다. 앙고라 소재의 흰색 스웨터나 목가적인 레이스 드레스와 맞춰도 좋겠다)” 등 쉽지 않은 말들의 향연이었다.

외래어에 대한 인식이 점점 개방되고 있지만, 과한 외래어 남발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특히 이런 과한 외래어 남발이 세대를 구분짓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래어에 익숙하지 않은 1950~60년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매장에 직접 가서 제품을 사거나, 주문하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진호씨(57·대구 수성구 범물동)는 최근 아내와 함께 커피 전문점에 방문했다가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점원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스페셜티, 그란데 사이즈까지 커피 한 잔을 주문하는데 필요한 용어가 모두 생소한 외래어여서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아내를 위한 과일 주스를 주문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과일 이름 외에 스파클링, 블렌디드 등 어려운 외래어로 가득 찬 메뉴판을 보다 현기증을 느꼈다.

정씨는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면서 “보통 자녀들과 올때는 주문을 맡기면 되는데, 아내와 오붓하게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새삼 힘들게 느껴진다. 한국어로 설명이 돼 있으면 좋을텐데 일일이 물어봐야 해서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공공기관에서 외래어를 남발하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구시는 ‘컬러풀 대구’를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고, 매년 5월 ‘컬러풀 축제’도 열고 있다. 경북도도 마찬가지. 도시를 상징하는 슬로건을 확인한 결과, 23개 시·군 가운데 절반 이상인 13개 시·군이 영어와 혼합된 문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철희 경북대 한국어문화원 연구원은 “충분히 대체 가능한 우리말을 두고 외래어를 불필요하게 남발하는 세태가 안타깝다”면서 “사실 국어 순화작업도 쉽지만은 않다. 순화한 말을 공표하더라도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이 순화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