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대한민국에 진보는 없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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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1   |  발행일 2019-10-11 제31면   |  수정 2020-09-08
[금요광장] 대한민국에 진보는 없다
전지현 변호사

대한민국 법원에는 확연히 갈라선 두 개의 법정이 있다. 하나는 적폐 전용이며, 다른 하나는 개혁 전용 법정이다. 촛불이 재판하는, 아니 이른바 촛불 세력을 내세우는 진영이 만들어낸 씁쓸한 법정의 풍경이다. 재판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적폐용 법정에는 총 4명의 피고인이 섰다. 이 중 딸을 억지로 이화여대에 집어넣은 ‘비선’ 실세는 “우리 딸은 열심히 말을 탔을 뿐”이라고 거칠게 항변했고, 수사를 방해했다는 ‘권력’ 실세는 “그냥 상황만 파악했을 뿐”이라고 얼버무렸다. 이들을 신뢰한 전직 대통령은 본인이 초래한 모든 잘못을 인간적인 믿음과 어머니의 가르침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가장 나중 등장한 전 전 대통령은 일일이 보고받고 관여한 회사에 대해 절대 본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항변은 나름 그저 세간의 웃음거리였다. ‘법꾸라지’의 면피용 발언 내지 무지함이나 뻔뻔함의 소치라고 치부됐기 때문이다. 수차례 걸친 검찰의 영장청구, 먼지털이식 압수수색, 별건 수사 따위의 항변은 가차 없이 무시되었다.

그 옆에 있는 개혁 전용 법정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한 사람 입을 통해 나온다는 것만 다를 뿐이지 혐의와 항변 내용은 유사하다. 현직 장관인 이 사람은 자녀입시를 위해 자격증을 위조하고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검사에게 빨리 끝낼 것을 지시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부인이 수십억원을 투자한 회사가 주가를 조작하고 여기에 100억원 넘는 외부 자금이 들어갔다는 의혹도 재판정에서 다뤄졌다. 이 사람은 말한다. “우리 아이는 정상적으로 인턴활동을 했습니다” “그저 남편으로서 전화를 바꿔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코링크라는 이름도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개혁 법정의 재판부는 오히려 이 사람을 법정에 세운 게 잘못됐다고 검찰부터 호되게 질책했다. 왜 먼지털이식 수사를 해서 검찰 개혁을 방해하느냐고 한다. 이건 아니라고 외치면 가차 없이 방청석에서 퇴장 당했다.

조국 장관이 기소되지 않았지만, 한 번 상상 속의 재판을 그려보았다. 상상은 자유라지만, 이런 상황이 법으로 제한을 받는 법정에서라면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든다. 재판에는 상소도 있고 재심도 있다. 얼마든 법리에 따라 달리 판단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암울해 보인다.

‘광화문 집회 vs 서초동 집회’, 대한민국을 두 쪽 내버린 극한 갈등의 귀책을 따지면 야권보다는 권력을 틀어쥔 이른바 ‘진보’ 진영의 잘못이 너무나 중하다고 본다. 양측 입장을 대표하는 유력 인사들이 나와서 논쟁하는 TV토론 프로를 보자. 조국 반대 측은 “위법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한다. 법과 상식의 한계를 넘었으니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찬성측은 시종일관 개혁을 얘기한다.

왜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걸까? 논거를 진영 논리에서 찾으니 그렇다. 이 바탕에는 진보 진영이 가진 진영 논리의 한계와 욕심이 있다. 진영과 정권유지욕은 그냥 자체가 ‘신성불가침 경전’이란 점에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득하기 어렵다. 무슨 얘기일까? 진보는 기본적으로 이상을 추구한다. 이상은 우리가 사는 현실과 제도 너머에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법과 제도는 개혁 대상이지 진보의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조국 장관 건만 하더라도 한쪽은 제도가 이렇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하고, 또 한쪽은 제도를 바꿔야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니 양측이 서로 목소리만 높아지며 치받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우리 사회 주류라는 ‘진보’에는 정권유지가 곧 이상이다. 세금 풀어 표심을 얻고 북한 이슈로 적당히 넘어가고 적폐 수사를 이용할 궁리만 한다. 민심은 아니라고 하는데 내란을 운운한다. 절대 양보란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건강한 진보의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더 이상 토론은 필요없다. 그들이 부르짖는 정의라는 것도 지금의 국면에서는 누군가의 신분 상승의 수단이었다고 솔직히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지금 상황은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말이 안 통하니 가슴이 터진다. 전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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