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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안개 속에 묻힌 서랍장 같은 집에서 짓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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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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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방식으로 보이는 것과, 미처 보지 못한 것의 이면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때아닌 가을비에 농부들은 시름이 깊다. 세상의 여러 면모가 안개 속에 잠겼다. 희뿌연 마을전경이 비방으로 점철된 뉴스처럼 답답하다. 투명한 양심과 현명한 판단이 절실해지는 나날이다. 현실에 불만족할 수록 그림의 집은 비현실적인 마을과 도시를 건설한다.

“왜 집을 그리세요?” 집 그림을 그린 이후 자주 받는 질문이다. 답은 간단하다.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집을 벗어나본 적 없는 삶이었던 나에게는 집이야말로 화두다. 집은 몸에 밀착된 옷처럼 우리 삶에 밀착된 보호막이다. 집은 삶의 내용과 형식의 총합이다. 예술은 삶이고 삶은 집이다. 집은 곧 나이고, 나의 집 그림은 그래서 자전적이다.

집과 가정의 의미는 종종 혼용된다. 동일시되기도 한다. 가정의 달 5월이면 다채로운 행사가 집을 집중 조명한다. 전시장에서는 집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곤 한다. 출품작들 중에는 집의 외형에 가정(家庭)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 다수다. 집을 가정으로 한정하면 내용은 제한된다. 우주(宇宙)로 상정하면 그 의미가 더욱 확대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화가들에게도 집은 안식처다. 짐이기도 하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집을 나섰던 까닭이지 않을까.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를 집에 두고 홀로 타히티로 가서 그림을 그리다가 생을 마감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에게 집은 아픈 몸과 맘의 쉼터였다면 나혜석(1896~1948)에게는 굴레였지 싶다.

‘이혼 고백장’(1934)과 ‘신생활에 들면서’(1935)를 썼던 나혜석은 한국 근대기 가부장제의 모순을 비판하며 임신과 출산, 육아의 경험을 공론화했다. 남녀가 평등하길 바랐던 화가는 1930년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관계가 공개되자 이혼하고 아이들도 만날 수 없게 됐다. 지친 심신은 사찰과 양로원을 전전했다. 광복 후 행려병자로 숨을 거둔 나혜석에게 집은 프리다 칼로의 쉼터와는 또 다른 의미이지 않았을까. 불완전한 가정사는 화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완벽한 가정은 환상이다.” 어느 저자가 그의 책에 쓴 말이다. 완벽해 보이는 가정에도 작은 문제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마치 서랍장처럼 닫으면 깔끔하지만 열면 잡다한 것들 범벅이다.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닫힌 서랍장 같은 집처럼 한 면만 보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무수하다. 지난 수업 시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의 그림을 띄워놓고 던진 질문이다. 그림의 제목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이다. 선명하게 묘사된 파이프는 누가 봐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사실적이다. 많은 학생들의 대답은 ‘파이프’였다. 과연 그럴까?

힌트는 화면 아래쪽에 새겨놓은 문장 안에 있다. 제목에서 제시했듯 글씨는 “파이프가 아니다 ‘Ceci n’est pas une pipe(This is not a pipe)’”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본 것은 파이프 형상의 물감 내지는 스크린이다.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눈치 챘을 것이다. 마그리트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고 엉뚱한 요소들을 배치한 것이다. 전통적인 시각에선 낯선 현대미술의 단면이다.

이 질문을 플라톤에게 했다면 이데아를 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게슈탈트(형태) 심리학자들은 미처 보지 못한 이면을 찾아보라고 했을 것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이 다른 한편으로는 그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잘 보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지 못하게 하는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의 주장이다. 비단 형태심리학적 관점만이겠는가.

보고 있기에 못 보는 것이 있듯이 알고 있기에 범하는 실수도 있다. 천동설은 수백 년 동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주장과 어긋나는 다양한 경험적 사실들을 부정했다. 천동설 외에도 인류문화사에는 익숙한 방식으로만 보려고 했던 예가 넘쳐난다. 알고 있는 지식체계에만 기대었던 내 모습이기도 하다. 돌아보니 이질적인 것, 나와 다른 생각이나 측면에 마음을 열기보다 밀어낸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일면만 보면 가려진 이면은 무시되거나 사장되기 십상이다. 자신의 논리만 옳다고 강요하면 불만의 골은 더 깊어진다. 시야를 가린 안개처럼, 가위눌린 듯한 현실의 문제들이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화가는 가려진 면모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집을 짓는다.

화가·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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