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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군인의 애틋한 사연들로 써내려간 한국전쟁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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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경기자
  • 20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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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실향민 아버지 둔 다문화연구자인 저자

영국 런던 소재 한국전쟁기념비 등 찾아

국내외 참전 군인 삶 입체적으로 담아내

인물역사 따라가며 잊혀진 기억들 복원

“너희는 모르는 고생” “지긋지긋한 얘기”

전쟁 경험 세대-전후세대 간 화해 제안

영국 런던의 템스강변에 세워져 있는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비문. <창비 제공>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전쟁’은 실존해 온 위협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전쟁에 무감하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한반도 전쟁설’에 단련이 돼서인지, 너무 오랜 세월 전쟁과 안보를 우려먹은 정치세력이 만든 불감증인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현실을 부정하게 만든 건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에 대한 흔한 오해를 가지고 있다. ‘전쟁 불사’로 평화를 외치는 것이다. 전쟁을 각오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쟁은 패자는 물론 승자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나와 내 가족의 죽음이 국가의 승리보다 더 중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차 세계대전으로 우리가 배운 것이 전쟁의 참혹함과 비정함이 아니었던가. 지구촌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고 많은 나라가 엄청난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2018년 4월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던 날. 런던에 살고 있던 이주민·다문화 관련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작가 이향규씨는 영국인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남북한이 통일 되기를 ‘당신은’ 바랍니까?”

“우리 아버지는 전쟁 때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을 지금까지 만나지도 찾지도 못했어요. 한국에는 그런 가족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향규지음/ 창비/ 256쪽/ 1만5천원
그렇게 답하자 슬퍼졌다. 아들을 다시 못 본 어머니 때문인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소년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들과 그렇게 헤어진다면 스스로 느끼게 될 비통함이 상상만으로도 목을 메이게 했는지 어쩌면 그 때 그곳이 너무 평화로워 보여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아무 조건을 달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네, 저는 통일이 되면 좋겠어요. 분단이 너무 오래되어서 저는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이 어떤 모습인지도 잘 모르겠고 사람들의 고통에도 무감해진 것 같거든요.”

전쟁과 통일에 대한 무감함이 어찌 저자만의 일일까. 책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아버지 세대의 전쟁경험을 돌아보며 한국전쟁이 우리 마음에 남긴 흔적과 우리 사회에 새긴 상처를 보듬는다. 이를 통해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와 분단의 비극으로 평생 불행했던 아버지 세대가 세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실향민이다. 아버지 세대의 전쟁 경험을 듣는 것은 지루하고 힘들었다. “너희는 모르는” 고생한 이야기들과 북한공산집단의 만행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북한의 정체를 모르면서 철없이 날뛰는 운동권과 좌파 정치인 이야기로 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르신들의 전쟁경험 이야기는 1953년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저자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평화를 위해서도 한국전쟁은 ‘지긋지긋한 옛 이야기’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런던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이스트본의 청년, 맨체스터와 벡스힐의 노인들, 아버지의 일기, 영국군 참전군인들과 한국의 대학생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전시, 맨체스터의 제국전쟁박물관, 부산의 유엔기념공원 등을 돌아보며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전쟁을 다시 썼다. 유엔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산에 묻힌 영국 청년 마이클의 사연과 수많은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했던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영국 노인 제임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버지 세대의 끝나지 않은 전쟁과 젊은 세대가 꿈꾸는 오지 않은 평화에 대한 화해를 제안한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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