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카이로스의 시간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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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4 07:58  |  수정 2020-09-09 14:31  |  발행일 2019-10-14 제15면
20191014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선택을 한다는 것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루는 고작 24시간으로만 이루어졌고 그 사실은 누구에게나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시간에는 두 가지의 다른 개념이 존재합니다. 우선,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스어의 크로노스(Chronos)에서 발생한 ‘크로노미터’ 시간 개념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의 삶을 조절하고 적당히 규제해 줍니다. 이 시간의 개념이 없이는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고 약속을 할 수도 없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혼란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우리 사회가 작동하게 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크로노스의 시간은 경제 논리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이익 창출을 위해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야만 하며 우리는 그로 인해 항상 짧아져만 가는 시간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시간의 또 다른 개념은 시간의 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이로스(Kairos)’입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발생하게 만드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주관적 시간을 의미합니다. 순간의 찰나일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긴 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고 카이로스로 시간을 바라보는 이들은 시간의 주인으로서 능동적으로 삶을 영위하려는 자세를 갖춥니다. 이들은 매 순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힘쓰고 크로노스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거나 매일을 새로운 개념으로 열어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과는 달리 카이로스의 시간 개념에서는 시간의 양을 재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질적인 경험에 기초한 개념입니다. 책을 읽는다거나 산책을 하는 등 잠시 동안 크로노스의 시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우리 자신을 되찾고 우리를 조금 더 창조적으로 만들어주며 예기치 않은 무언가에 도달하게 해 줍니다.

항상 바쁘다는 것은 자아를 피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자신이 이끄는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우리 삶의 수많은 요소들을 그냥 무시하고 넘기거나 보이지 않는 한편에 놓아 둡니다. 철학자 니체는 이것을 영혼에 깃든 불편한 잔잔함이라고 불렀습니다. 해결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잊히어 마치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지혜롭고 민주적인 정치가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회에 충분히 반영하고 폭군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일하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을 회피하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니체가 말한 ‘불편한 잔잔함’을 벗어 던지고, 플라톤이 말한 지혜로운 정치가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시간의 줄을 느슨하게 만들어 볼 수 있을까요?

벌써 문구점에서는 내년 다이어리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새롭게 1년을 계획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 전에 아직도 우리에겐 올해의 석 달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인가요? 풍요로운 삶을 위해 시간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인가요? 아직 올해는 석 달이 남아 있습니다. 인생에 주어진 카이로스의 시간이 좀 더 길어져 자기 자신과 진심으로 대면하는 순간이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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