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시발비용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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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5   |  발행일 2019-10-15 제31면   |  수정 2019-10-15

시발비용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비용을 일컫는 신조어다. 비속어에 속하는 ‘시발’과 ‘비용’을 합친 의미로 통용된다. 자조적 표현으로 욕설이 들어있는 시발비용은 일상 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로 인한 순간적 소비로 표현한다.

2016년 가을 무렵 누리꾼이 시발비용의 정의와 예시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트위터의 시발비용은 “스트레스를 받은 뒤 홧김에 치킨을 시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평소와는 달리 택시를 탄다”는 현실적 내용으로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샀다. 시발비용이라는 신조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직장인이다. 직장인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먹거나 마시는 기호식품은 술, 커피, 과자, 초콜릿부터 가격이 비싸거나 열량이 높은 피자, 족발까지 매우 다양하다. 스트레스 받은 날에는 영화보기, 노래방에서 한곡 뽑기, 네일아트 받기 등과 같은 소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알뜰 소비도 있다.

시발비용이 가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엄청나게 커질 때도 있다. 명품 옷이나 가방을 사거나 휴가를 내고 해외여행을 떠날 목적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직장인에게 소소한 시발비용은 가성비에 비해 높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 소비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정 소비에서 벗어나면 경제적 타격이 동반되기 때문에 한번쯤 시발비용을 놓고 고민해봐야 한다. 얼마 전 어느 취업 포털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성인 남녀 10명 중 8명은 홧김에 스트레스로 돈을 낭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필요없는 물건을 구매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가뜩이나 힘겨운 현실에 미래마저 암울한 시대를 사는 젊은 층은 누가 뭐래도 스트레스 세대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서 취업은 하늘에 별따기이고 최소한 은수저 정도가 돼야 내집 구하기도 쉽다.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 스트레스 받고 있는 자신을 먼저 위로하려는 시발비용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일 매스컴을 달구는 국정혼란 사태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발비용도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즐기려는 시발비용이 욜로(YOLO)시대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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