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인적쇄신 없이 면모일신 없다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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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8   |  발행일 2019-10-18 제23면   |  수정 2019-10-18
[이재윤 칼럼] 인적쇄신 없이 면모일신 없다

조국사퇴가 있었던 14일 하루 여권의 대응은 무난했다. 예기치 않은 큰 일이 닥치면 첫 한마디와 첫 발걸음이 후일의 명운을 종종 가른다. 조국사퇴의 변, 청와대 반응, 여권의 대응은 민심을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우려했던 ‘조국의 운명=정권의 운명’이란 등식은 최소한 피해갔다. 진보진영도 조국사퇴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조국사퇴로 표정이 굉장히 밝아졌다’는 평(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면서 여권이 뭔가 자가당착에 빠졌거나 번지수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부여당의 첫 번째 패착은 조국사퇴로 완패한 그 운동장 주변을 여전히 서성이고 있다는 점이다. 변곡점을 지나면 새 각오와 새 언어로 새 장(場)을 열어야 한다. 몸과 마음이 변함없이 과거에 멈춰있다. 이 와중에 ‘조국 역할론’은 왜 나오나. 총선·대선에 차출한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에 진배없다. 칼을 강에 빠트리자 배 위에 칼 빠진 지점을 표시하는 꼴이다. 배는 이미 나아갔는데 배에 표시된 지점에서 칼을 찾으려해서 어쩌자는 건가. ‘조국 역할론’은 지나간 배 위에서 물에 빠진 ‘조국’을 건지려는 격이다. 집착인가 미련인가 아쉬움인가. 다 미망(迷妄)이다.

두 번째 패착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데 있다. 조국퇴진은 명예롭지 않다. 불명예 퇴진이다. 법무부의 ‘조국사퇴 동영상’은 또 뭔가. ‘대선후보 조국 출정식’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했다. 패장의 퇴진이 아니라 영웅의 등장을 알렸는가? 당에서는 엉뚱한 얘기가 나온다. 조국 후임에 전해철? 꿈도 꾸지마라. 민심과는 너무 멀다. 이게 정부여당의 현실인식이라면 큰일이다. 여론에 맞선 무리수가 거듭되고 있는 점은 문재인정부의 심각한 이상 징후다.

국정운영의 면모를 일신(一新)해야 한다. 개혁을 말하기 전에 내부혁신부터 해야 한다. 첫 번째 할 일이 사과다. 사과는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이고, 다음 스텝을 내딛는 발판이자 새 장을 여는 문이다. 극심한 국민분열을 초래한 데 대해 머리 숙여야 한다. 굴욕이 아니라 그게 의연한 정치다. 문재인 대통령도 ‘잘 못하면 잘 못했다고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 약속을 지키겠습니다’하고 국민 앞에 서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늦어지면 진짜 굴욕이 된다.

두 번째 할 일은 인적쇄신이다. 순서는 사과가 먼저지만, 중요함에서는 인적쇄신이 첫째다. 인적쇄신 없이 면모일신 없다. 이낙연 총리는 잘 해왔고 여론도 호의적이다. 그는 정치권에서 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계기가 왔을 때 물러남이 옳다. 사퇴설까지 나왔으니 용퇴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부여당으로서도 새 각오, 새 면모를 천명하는데 총리교체만한 카드가 없다. 다소 과하다고 생각할 처방이 나와야 진정성이 느껴진다.

청와대의 인적쇄신은 불가피하다. ‘대통령에게 충언할 사람 없다’는 한탄이 내내 있어왔다. 대통령의 외로운 결단이 상시화되면 국정 위험지수는 높아진다. 모든 비판이 기-승-전-문(文)으로 귀결되는 것도 그런 연유다. 청와대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고장 났다는 말이다. 국정 현안의 정무적 관리 부재도 하나의 이유다. 문재인정부 들어 감당키 어려운 갈등 전선(戰線)이 국내외에 다발(多發)한 것은 위기관리의 명백한 실패다. 전문성과 경험 있는 인사들로 청와대 진용을 새로 짜야 한다. 필요하면 비서실장까지 포함하는 게 좋겠다. 인적쇄신의 키워드는 ‘통합’과 ‘능력’이다. ‘통합’은 소통하고 화합하라는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고, ‘능력’은 집권 3년차 국정성과가 다급해졌기 때문이다. 울타리 안에서만 찾지 말고 널리 탕평(蕩平)의 인재를 구해야 한다.

정의를 외치는 것은 쉽다. 스스로 정의롭다는 자족감도 높인다. 그러나 외치는 것보다 만들어가는 것이 더 힘들고 가치 있다. 외치는 것은 야(野)의 품성이고 만들어가는 것은 여(與)에 필요한 덕목이다. 작금의 진보는 어디에 익숙한가. 현대사 세 차례의 집권이 있었지만 진보는 여전히 만들어가는 것의 철학과 고단함을 학습하는 중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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