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이제 눈치도 볼 줄 알아요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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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1 07:38  |  수정 2020-09-09 14:44  |  발행일 2019-10-21 제15면
[행복한 교육] 이제 눈치도 볼 줄 알아요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중학교 1학년 담임이 힘든 건, 그 무렵 남자 아이들이 심심한 걸 조금도 참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다. 별일이 아닌데도 별별 사건을 만들어 낸다. 특별히 악동들 몇 명이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는 반은 더욱 그렇다. 작은 틈만 보여도 동시다발로 장난기가 발동한다. 같이 장난치며 놀던 친구가 조심스럽게 손들며 “선생님, 저~ 배가 좀 아파서…” 하는 순간, 한 놈이 배를 움켜쥐고 “쩐쨍님, 저 배가~” 익살을 부리며 흉내를 낸다. 그러는 순간 옆 짝이 “우쭈쭈 응가 해야지.” 바로 한 수 거든다. 뒷자리 친구도 “얌마, 너 혼자 과자 한 입에 털어 넣더니… 그럴 줄 알았어.” 1초도 놓치지 않고 놀린다. 화난 선생님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사건화되고, 담임은 그럴 때마다 왜 그런 반응이 문제가 되는지를 한 단계, 한 단계 짚어가며 역지사지를 시킨다. 그래야 잘못했다는 말이 나오고 연이은 갈굼의 고리가 끊어진다. 3월부터 제일 애먹은 담임이 이야기한다. “이제 눈치도 조금 볼 줄 아는 걸 보니 다 키웠어요.” 눈치를 볼 줄 안다는 것, 이게 사회성의 중요한 단면이다.

국어사전에는 ‘눈치 보다’를 ‘남의 마음이나 생각, 태도 등을 살피다’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 말이 오랫동안 주눅 든 아이가 위압적인 어른을 향해, 사회적 약자가 변덕이 심한 상사의 기분을 살피는 상황에서 많이 쓰이다보니 대부분 부정적 의미로만 쓰였다. 특히 아동의 인권이 제로였던 시절, 폭력적인 부모 아래 자랐거나,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남의 집살이를 갔거나, 어릴 때 엄마를 잃고 의붓어미 아래 자란 아이가 ‘눈칫밥을 먹고 자랐다’라는 서러운 시절의 관용적 표현으로 썼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눈치를 볼 줄 안다는 것은 부당하고 억울한 일상에도 상황을 잘 파악하여 억눌림의 수위를 낮추고, 들어갈 때, 빠질 때를 잘 알아서 틈새에 존재해도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며 산다는 것이다. 때로 어린 것이 속울음을 삼키면서도 증오하는 대상에게 쓱쓱 웃어 보이며 그 분이 원하는 것을 해 놓아 귀여움을 받는 단수 8단의 경지에 오르기도 한다. 눈치를 보며 성장한 사람은 보좌관의 위치일 때는 아랫사람과 윗사람 사이에서 조율을 잘한다. 처세가 뛰어나다. 그리고 자신이 리더일 때는 자신의 ‘감각’을 굉장히 신뢰한다. “내가 눈치를 보니…, 내가 눈치가 빠른데…”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리고 실제로 센스가 있어 상황 조절을 잘 하기도 한다. 물론 때로 자신의 감을 지나치게 믿다가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 세대는 줄줄이 여러 형제 틈에서, 또 동네 골목을 따라 살아가는 고만고만한 이웃 어른들도 다 알고 지내는 터라, 말도 나기 쉬웠고 간섭도 심했다. 그러나 요즘은 자녀가 한둘인 데다가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아이들 기 꺾인다고 버릇없고 불편한 행동도 허용하다 보니, 제 기분대로 표현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아이가 많다. 중학생이 되어도 도무지 주변 상황을 살필 줄 모르는 아이들이 늘었다. 이 지점까지는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 경계를 넘으면 남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동시에 공동체 내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야하니 더 어렵다.

사실 어른도 주변을 헤아리면서 스스로의 삶을 사는 게 쉽지가 않다. 날이 갈수록 가슴으로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이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화려했던 벚나무와 무성했던 느티나무가 야위어 가는 이 무렵, 우리의 내면을 말없는 슬픔으로 뒤덮어가는 이런 늦은 저녁이면 이 모순된 상황에서도 애써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 조건을 잘 극복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모순투성이인 나와 타인을 보다 잘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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