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사전 찾아보기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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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1 08:05  |  수정 2020-09-09 14:41  |  발행일 2019-10-21 제18면


20191021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잘 아는 선배님이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다. 학습과 진로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는 아들 식구를 소개해 주고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나는 할아버지도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평소 열린 마음으로 후배들을 잘 챙겨 주고 아랫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분이라 나의 이야기에 선뜻 동의했다. 삼대가 같이 앉아 오늘의 세계와 우리가 살아갈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부하는 방법을 두고 토론하면서 우리는 사전 활용의 중요성을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요즘 학생들은 사전을 잘 활용하지 않는다. 종이 사전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도 많지 않다. 급하면 휴대전화기로 검색한다. 영어 단어장이나 국어 낱말 노트를 가지고 있는 학생도 드물다. 영어의 경우 시청각 기자재의 도움으로 듣기는 아날로그 세대보다 훨씬 낫다. 반면에 어휘 실력이나 어려운 문장 독해력은 과거 세대보다 떨어진다. 우리는 영어 사전에서 다양한 예문을 찾아 암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예나 지금이나 외국어는 좋은 문장을 많이 암기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견해를 같이했다. 교과서를 통째 암기하던 앞 세대의 학습법이 지금도 여전히 유용하다는 데도 동의했다.

국어사전 활용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학생에게 지금 이 시기를 ‘조락의 가을’이라고 하는데 ‘조락’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준비한 사전을 펼쳐 ‘조락’을 찾았다. 괄호 안에는 ‘시들 조(凋), 떨어질 락(落)’이라고 한자의 훈(訓)과 음(音)이 적혀 있었다. ‘조락’은 ‘잎이 시들어 떨어짐’이라는 뜻이고, 여기에서 ‘차차 쇠하여 보잘것없이 됨’이란 뜻으로도 의미가 확장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어사전에 수록된 낱말의 70% 정도가 한자어다. 그러므로 한자의 훈과 음을 알면 낱말의 뜻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동음이의어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자병용이나 혼용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한자어를 한자로 쓸 줄 몰라도 괜찮다. 한자어를 만날 때 가능하다면 사전을 찾아 그 한자의 훈과 음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할아버지와 손자, 아들과 며느리, 나, 우리 모두가 전적으로 견해를 같이했다.

그날 우리는 어휘를 정확하게 아는 것과 문장 이해력이 공부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토론했다. 국어 읽기가 안 되면 영어, 사회, 과학, 수학 등 모든 과목 공부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모든 학문은 정확한 ‘용어 정의(term definition)’에서 출발한다. 개념을 설명하는 용어를 정확하게 알아야 내용 파악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우리는 국어사전, 영한사전, 옥편, 고사성어 사전 등 각종 사전을 책상 위에 두고 항상 찾아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너무 쉽게 공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학생에게 한자어에 훈과 음을 적어 놓은 사전을 선물했다. 사전을 받는 학생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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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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