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학의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 그림책 박물관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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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5   |  발행일 2019-10-25 제38면   |  수정 2020-09-08
어린이도, 어른도, 그림으로 위안받는 행복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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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영 ‘그림책 박물관’ 관장.

누구나 살면서 그 무엇엔가 사로잡혔던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매혹됨의 원인은 ‘얼마나 진심이 담겨 있는가’의 문제였을 거라 짐작한다. 그 진심에는 상상력과 인간미, 감동과 열정, 공감과 배려 같은 것이 섞여 더욱 멋져 보였거나, 더욱 오랫동안 가슴에 남게 되지 않았을까. 오늘은 ‘진심’을 앞세워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두 공간을 찾아 간다. 기발한 상상력보다는 그 마음을 지켜온 먹먹한 감동으로 우리의 등을 토닥여주는 그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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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 초기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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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영 관장이 추천하는 새로 나온 그림책들.

한국 온라인 박물관 ‘그림책’
(www.picturebook-museum.com)


알라딘·앨리스처럼 마법의 세상과 만남
클릭만으로 펼쳐보는 세계 곳곳의 동화
무한 공간속 차곡차곡 쌓인 그림책 역사
국내 일러스트레이터 대표‘산그림’운영


그림책은 우리가 태어나 처음 만나는 책이자 0세부터 100세까지 세상의 모든 어린이와 어른이를 위한 책이다. 그림책은 어린이가 경험하는 최초의 문학이자 연극적 경험이다. 세상모르게 천진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고, 쉽게 상처받는 모든 마음들을 위한 책이다. 이런 그림책을 위한 ‘그림책 박물관’을 만난다. 지니를 불러내 소원을 이루는 알라딘처럼, 토끼굴로 들어가 마법의 세상을 만나는 앨리스처럼 클릭만으로 엄청난 그림책을 만날 수 있는 온라인 뮤지엄, 이름도 그냥 그림책 박물관이다. 세상의 그림책을 모두 가진 듯한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 한국은 세계의 그림책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독자에게는 풍부한 그림책 정보를 제공하고 작가에게는 위대한 작품의 역사를 잇게 하고, 출판사에는 더욱 수준 높은 그림책 제작을 위해 매진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가진 ‘그림책 박물관’이 되고자 합니다.”

임해영 그림책 박물관 관장의 당찬 선언이다.

임 관장은 나라 안팎의 그 많은 그림책들을 모으고, 그림책을 만드는 이들을 다독이고, 그림책의 깊은 뜻을 전하려 읽어주고, 멋진 그림을 보여주려 애쓰는, 게다가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는 능력자이다.

이렇게 독자적인 장르로서의 ‘그림책’을 다루고,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탄생한 그림책 박물관은 어느새 공공의 소중한 지적자산이 되었다. 최근 그림책이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인식과 함께 그림책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출간도 부쩍 늘어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림책 박물관을 감상하려면 일단 홈페이지를 들어와 봐야 이야기가 된다. 면피용으로 쉽게 만들어진 사이트가 아니다. 어느 메뉴, 어떤 링크도 소홀하거나 삐걱거리지 않고 탄탄한 반석 위에 놓여진 듯 실하다. 그 무한대의 공간 속에 그림책 박물관은 운영자의 성격처럼 깔끔하게 펼쳐져 있다.

그림책 박물관이 소중한 까닭은 또 있다. 출판 후 쉬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 권 한 권 소중하게 그림책 역사의 한편에 정리하고, 그림책을 알고 사랑하는 많은 이의 손길을 받으면서 매일 새로워지는 공간을 꿈꾸는 ‘산그림’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 그룹을 만들었다. 임 관장은 한국의 모든 일러스트레이터와 모든 그림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없을까’하는 매우 개인적인 동기와 호기심으로 2002년 ‘산그림’을 시작했다. 개인의 바람으로 시작해서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를 대표하는 사이트가 되었고, 그들과 함께 ‘그림책 박물관’의 정체성을 세워 나가는 과정은 매우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느 쪽 홈페이지에 먼저 들어가든 쉽게 오갈 수 있다.

…이곳이 천국입니다.

…들어오기만 해도 기분이 너무 좋아지네요.

…지친 어른들에게도 ‘탈출구’가 됩니다.

…삶의 여유를 찾습니다. 새로운 힐링 수단입니다.

임 관장은 늘 홈페이지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댓글에서 큰 용기를 얻는다. 그림책이 사람들에게 위안의 여백을 선사하듯이, 그런 여백들이 그림책 박물관 속에 촘촘하게 모여 있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오프라인 그림책 박물관은 없다.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거나, 턱없이 부족한 관심 때문에 생기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감히 말하지만, 그 누가, 그 어떤 기관이 서두르더라도 그림책 박물관을 삼고초려해서 그 애정 어린 노하우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임 관장의 ‘그림책 박물관’과 ‘산그림’은 최근 울산시에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이사했다. 심기일전 한 그의 각오는 홈페이지에서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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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아트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브루클린 아트 도서관’ 소장 스케치북에서 만난 안동하회탈 중 부네탈 (작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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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도서관(북모바일)은 다양한 현장에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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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북 프로젝트 참가 안내판.

美 뉴욕 ‘브루클린 아트 도서관’
(www.brooklynartlibrary.com)

빈 스케치북 주문, 주제 채워 온라인 연결
세계서 몰려든 소스, 또다른 사람과 공유
개인의 예술가 보다 강한 창의적 공동체
어디든 달려가는 이동도서관 프로젝트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아트 도서관’에 들어서면서 나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미술관, 도서관, 박물관, 갤러리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느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만든 수 만 점의 사연 있는 그림들이 모여 있다기에, ‘세계의 천재작가들이 책을 만들어 봉헌하는 곳’이거나 ‘세계 그림쟁이들이 여행길에서 만난 특별한 시간을 모은 곳’이겠거니 했는데, 지레짐작은 금세 무너지고 말았다.

130개국, 3만여명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가 보내온 4만5천권 이상의 스케치북과 2만권 이상의 디지털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브루클린 아트 도서관은 지난 13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스케치북’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성장해서 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단절된 예술 경력을 이어주고 있다.

인쇄업자인 스티븐 피터먼와 웹 개발자인 쉐인 저커는 2006년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서 전 세계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감상하는 ‘스케치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들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보통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 주고 싶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이제 그것은 상상을 넘어 다소 황당한 미술관이 되었다. 창의적인 공동체가 예술가 개인들보다 더 강할 수 있고, 전통적인 갤러리나 뮤지엄과는 다른 방식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념을 굳게 지켰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은 빈 스케치북을 주문하고, 주제를 선택하고, 그것들을 채워 자신의 이력과 독특한 내용을 담아 온라인에 연결한다. 그리고 스케치북은 다시 이 도서관으로 보내져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상상 이상의 목록으로 분류된다. 관람객들이 무료로 받은 도서관 카드를 스캔하면 가로 5인치, 세로 7인치, 총 32페이지의 스케치북 갈피에서 ‘누군가의 삶에서 뛰쳐나온 순간’을 만날 수 있다.(한 번에 두 권의 스케치북을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예술가의 이름, 나라 또는 주제에 따른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크라우드 소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되어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또 다른 이들과 공유되고 있다.

브루클린 아트 도서관은 북모바일(Bookmobile)이라는 의미있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소장 스케치북 500~800권 정도를 엄선, 앙증맞은 삼륜차에 싣고 학교나 기업현장을 찾아가 새로운 관람객에게 펼쳐 보이는 프로젝트다.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 홍보하는 ‘현대판 예술보부상’인 셈이다. 학생들은 거기에서 창의성을, 기업들은 글로벌한 영감을 받는다.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북모바일은 오늘도 세계의 유명도시를 방문 중이다. 돌아오면 7천500권의 스케치북이 다시 컬렉션에 더해질 것이다.

피터먼과 저커는 2010년에 지금의 윌리엄스버그로 그 창의적 플랫폼을 옮겼다. 브루클린 아트 도서관 이용자들은 누구든 25달러를 내면 32페이지의 빈 스케치북을 구입할 수 있다. 그 스케치북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 이곳으로 보내면 또 하나의 컬렉션에 더해지고,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훌륭한 여행도구가 된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곳을 다녀온 이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네 이야기를 나누고, 네 그림을 그리고, 그냥 그것을 나눠주라’는 귓속말이 ‘당신도 예술가가 될 수 있어!’로 들리는 마법에 걸리게 될 것이다.

문화와 예술을 지키는 바른 가치는 무엇일까. 대학(大學)에 나오는 ‘시이불견(視而不見) 청이불문(聽而不聞)’은 ‘바른 마음으로 집중하라’는 가르침의 다른 말이다. 다시 말하면, 시청(視聽)이 아니라 견문(見聞)의 자세가 더 중하다는 것이 아닐까. 예술을 감상하고 느끼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명작이란 온 마음으로 작품을 남긴 사람들을 위해 절절하게 느낀 마음들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대구교육박물관장 ·사진=김선국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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