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마음 톡톡] 삶과 죽음에 대하여

  • 임성수
  • |
  • 입력 2019-10-25   |  발행일 2019-10-25 제39면   |  수정 2020-09-08
100세 시대 ‘아름다운 인생’…늙어가는 법 배우기
20191025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외로움·쓸쓸함
불안과 걱정으로 소중한 시간 허비
준비없이 길어진 여생은 오히려 불행
행복한 마무리 위한 새로운 비전 준비
매순간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 가짐을


반 고흐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글을 썼다. ‘사람은 누구나 저 별을 향해 가고 싶어 한다. 살아서는 별에 갈 수 없고 죽어야만 갈 수 있다’고. 별에 가는 운행수단으로는 각종 병(病)이라며, 빨리 별에 가는 것은 병이라는 급행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고 자연사 하는 것은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라 했다. 고흐의 글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고흐에게’란 시를 썼다.

“이 별에 올 줄 몰랐지/ 엄마 뱃속에서 이별하고 나와/ 수많은 이별을 보고 들어/ 수두룩하게 이별 연습을 한 줄 알았어/ 이 별에서 이별은 늘 두렵고 서툴러/ 몇 백 광년 떨어져 아득히 먼 줄 알았지/ 우리는 사다리를 걸쳐놓고/ 한 계단 한 계단 걸어서 저 별로/ 별을 세며 가는 중이야/ 저 별에서는 다들 한 식구가 되지/ 오라 부르지 않아도/ 우리는 혼자서/ 타박타박 저 별에 가야 해/ 이 별은 그렇게 지나가는 거야”라고 써 보았다. 우리가 별에 가야 한다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허공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혼자서 저 별을 향해 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 지구라는 별은 저 별을 향해 가는 여정 중에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사유를 끌어 왔다.

근래 몸이 부실해져 병원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병원에는 어찌 그리 아픈 사람들이 많은지. ‘이 세상은 병원’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지만, 아픈 이들이 붐비는 병원에 가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을 기피했다. 죽음이라는 말의 파장이 두려워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보니 죽음은 늘 내 옆에서 같이 먹고, 자고, 놀고 같이 부대끼며 나와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이라는 말을 받아들이니 말에 대한 거부감도 불편함도 줄어들어 이제는 죽음에 대한 글도 시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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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노태맹 시인의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이란 에세이를 받아 읽었다. 늙음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묻어 있었다. 시인인 그는 요양병원 원장으로 늘 죽음을 옆에 두고 지켜보고 있는 의사다. 환자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식들 보다 그가 임종을 더 많이 지켜보게 된다고 한다. 그는 과학의 힘으로 생명의 시간은 늘어났지만 삶의 시간은 늘어나지 않았다며 생명의 시간이 곧 삶의 시간은 아니기에 병상에서의 멍한 눈빛의 시간은 삶의 시간이 아니라고 담담히 말하고 있다.

노태맹 시인은 또 죽음에 대해 환상을 가지지 말라고 한다. 죽음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아름답게 마무리 되고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의 마지막 대사도 감동적이고 아름답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이 아름다웠다고 행복했다고 즐거웠다고 회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고 묻는다. 그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 혹은 종교적 수련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죽음을 이길 만한 지혜와 용기가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만들어진 허구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한 죽음의 마지막 장면처럼 현실에서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의 문까지 많은 이들을 보내드린 그의 경험담이다.

우리는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며 걱정하고 있다.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죽음을 모르기에 더 불안해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즐기지도 못하고 귀중한 시간을 마구 흘려보내는 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있다. 점점 늘어나 최장 123세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지면 200세 정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 산다면 정말 행복할까? 준비 없이 길어진 여생은 행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이 시대에 노년의 살아 갈 날들을 위해 자기에게 맞는 새로운 꿈과 비전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가치 있는 인생, 품위 있는 인생을 보낼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법은 배우고 익히는데, 늙어가는 법이나 죽음에 대해서는 배우려 하지도 않고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는다. 주변에 나이든 이들을 보면 자신의 늙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죽음은 두려운 존재이고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하면서 자신과는 아주 먼 이야기라고 여긴다. 그렇게 준비없이 노년을 맞게 되면 주변 상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노인들이 울분이 많아지는가 보다.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동네 가운데에 공동묘지가 있다. 늘 꽃으로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다. 가까운 일본만하더라도 동네에 묘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무덤이 멀리 떨어져 산 속에 있다. 일상생활과 떨어뜨려 놓았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죽음에 대한 인식도 달리 보게 하는 것 같다.

어느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외래로 오는 환자들 대부분이 외로움과 쓸쓸함에 대해 굉장히 고통스러워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정신질환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잘 극복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질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이나 쓸쓸함은 애도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애도를 극복하지 못하면 멜랑콜리증세를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쓸쓸함을 느낀다. 그러나 노년으로 접어들면 그런 감정이 더 격해져 서러움까지 몰고 온다. 거기서 쉬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자신을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 나이든 이들에게는 지금까지 살아 온 삶보다는 남은 삶이 짧기에 이제는 외부의 소리가 아닌 내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야 가치 있는지 생각하고, 혼자서도 외로움을 극복하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외로움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의사 선생님은 “소화가 잘 되는 따뜻한 음식을 먹고 햇살이 좋을 때 산책하고, 향기로운 보디제품으로 목욕하고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좋아하는 시가 있으면 시 구절을 낭송하고 그리고 아! 정말 살아있는 것이 고맙구나, 정말 고맙구나! 하고 감사하며 지내라”는 처방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다음에 오실 때 어떻게 지냈는지 말씀해 달라고 한단다.

멋있는 처방이다. 걸어서 별에 가기 위해서는 이 처방을 사용하여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매 순간 즐겁게 살아야겠다.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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