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조국(曺國)이 조국(祖國)을 구하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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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9   |  발행일 2019-10-29 제31면   |  수정 2020-09-08
[CEO 칼럼] 조국(曺國)이 조국(祖國)을 구하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조국이 조국을 구하다니. 초경쟁사회와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찌들대로 찌든 대한민국 ‘뱁새’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바로 조국 덕분에. 왜? 조국으로 대변되는 금수저를 문 ‘황새’들, ‘그들만의 세상’에 감히 뱁새들이 도전장을 던졌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 열풍을 일으킨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는 구구절절 이 시대 뱁새들의 응어리를 웅변한다. “난 뱁새 다리. 넌 황새 다리. 걔넨 말하지. ‘내 다린 백만 불짜리’”라고. “내 껀 짧은데 어찌 같은 종목 하니? They say ‘똑같은 초원이면 괜찮잖니?’ 뱁새들. 열받았다.” Never!.

똑같은 초원이라니? 조국의 딸, 황새 조민(曺民)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인 뱁새 젊은이들이 어떻게 똑같단 말인가. 황새들은 뱁새들을 조롱했다. “They call me 뱁새. 욕봤지 이 세대?” 뱁새들은 절규한다. “황새 덕에 내 가랑인 탱탱. 알바 가면 열정 페이. 언론에선 맨날 몇 포 세대… 이건 정상이 아니야...내 탓이라니. 너 농담이지. 공평하다니. Oh are you crazy. 이게 정의라니! 농담하니!”

수백만의 뱁새들이 광화문으로, 여의도로 뛰쳐나갔다. “아 노랗구나, 싹수가. 역시 황새야! 실망 안 시켜. 이름값 하네. 다 해먹어라.” 뱁새들은 대통령을, 청와대를, 국회를 향해 목청 터지게 외쳤다. “룰 바꿔. Change. 황새들은 원해. Maintain. 그렇게는 안 되지 BANG BANG. 이건 정상이 아니야. 정상이 아니라고”

뱁새들이 뭉치자 황새 조국은 서울대로 날아갔다. 자식들이 억울하게 소환조사를 받아 ‘가슴에 피눈물이 난다’는 황새 정경심 교수는 구속 조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가슴의 시퍼런 멍울이 풀리지 않는다. 뱁새들을 진짜 화나게 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든다며 사람 중심의 경제·사회구조로의 전환을 약속했다. ‘혁신의 힘’ ‘포용의 힘’ ‘공정의 힘’ ‘평화의 힘’을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공정’이 바탕이 되어야만 혁신도, 포용도, 평화도 있다며 무엇보다 ‘공정사회’를 새롭게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반성과 성찰을 기대했던 뱁새들은 또 다시 절망했다. “아이쿠, 황새 한 가족 몰락한 것으로 끝인가 보다! 역시 뱁새는 자기 분수를 지켜야지, 황새 쫓다가 가랑이만 찢어지겠다.” 천만에. 지금 대한민국에 그런 뱁새들은 없다. 뱁새는 참새와 함께 우리나라 텃새다. 뱁새는 덤불이나 수풀 속에 살며 높이 날지 않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쉽게 무시당한다. 몸집이 작으니 크게 보이려고 무리를 지어 몰려다닌다. 모여 다녀도 무서우니 서로를 찾아 재잘거린다. 어쩌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겁이 나 큰 소리로 ‘비비’하며 다른 뱁새들을 부른다. 그래서 추가된 이름이 ‘비비새’다. 겁에 질린 울음소리가 슬프게 들린다.

그러나 뱁새는 무리를 짓는 것이 거친 생태계의 생존 방법임을 안다. 백만, 2백만, 3백만으로 무리 진 뱁새들이 짧은 다리로 거리로 몰려 나왔다. “몸집 작다고 무시하지 말라”고. “내년 4월 총선엔 꼭 투표하러 나간다”고. “황새와 똑같이 대접하라”고. 이렇게 뱁새들이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불공정 대한민국’을 단호히 거부하고 ‘공정 대한민국’을 위해.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조국은 소심하고 겁 많은 뱁새들을 자극했고 행동하게 했으니, 그야말로 조국이 조국을 구했다. ‘공정사회’는 문 대통령이 아닌, 뱁새들이 만든다. 그에게 남겨진 시간은 6개월이 채 안된다.

김행 (소셜뉴스 위키트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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