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정의 감각수업] ‘접촉 위안’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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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1   |  발행일 2019-11-01 제39면   |  수정 2020-09-08
피부에 닿으며 느껴지는 만족감, 고객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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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는 ‘드러난 뇌’라고 불린다. 이를 통해 받아들인 자극이 ‘촉감’이다. 촉감은 두 사람 또는 두 개의 사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감각이다. 현재 이곳에 있는 나의 몸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그것으로 정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악수를 하면 서로의 감촉과 온기가 손에 전달되고, 그 순간 감각이 변화되고 마음에까지 영향을 준다.

피부는 신체를 외부의 이물질로부터 보호해주고 체온을 유지한다. 인체 최대의 감각기관으로 면적은 약 1.6~1.8㎡이다. 접촉이나 압력, 온·냉감, 통증 등을 느끼게 하는 감각수용체들이 있어 매끄러움, 부드러움, 따뜻함 등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촉감은 제품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촉각에 대한 민감도는 성별, 연령, 부위 등에 따라 다르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민감하고 얼굴이 발보다 민감하다. 여자들은 얼굴이나 다른 부위의 민감도가 거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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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퇴근한 아빠에게 달려온다. 아빠는 가방을 내려놓고 아이를 안아주고 뺨을 비빈다. 회사에서 받은 아빠의 스트레스가 스르르 녹는 순간이다. 아이 역시 아빠가 보고 싶었던 마음을 녹여낸다. 여기서 아이와 아빠가 서로 안아주고 뺨을 비비지 않는다면, 아마도 기쁜 마음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아이와 아빠가 서로 안아주며 기쁨을 나누는 것과 같은 것을 ‘접촉위안(Contact Comfort)’이라 한다. ‘접촉’은 단순히 피부에 무엇인가 닿는 것 이상의 많은 반응을 일으킨다. 이제는 마케팅에서도 ‘접촉마케팅’이 필수로 자리 잡았다. 고객이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함으로써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접촉마케팅은 태생적인 만족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위스콘신대학의 해리 할로 교수는 ‘헝겊 엄마, 철사 엄마’라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할로는 새끼 원숭이에게 두 종류의 엄마를 주었다. 한 엄마는 가슴에 우유병을 달고 먹을 것을 주는 철사 엄마였고, 한 엄마는 부드러운 헝겊으로 감싼 엄마였다. 생존을 생각한다면 철사 엄마와 가깝게 지내야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새끼원숭이는 우유를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헝겊 엄마와 보냈다. 자라서 몸이 커지자 우유를 먹을 때도 손과 다리는 헝겊 엄마에게 두었다.

할로 교수는 이와 다른 실험도 진행했다. 아예 태어나자마자 헝겊 엄마, 철사 엄마에게와 함께 자라게 한 새끼 원숭이에게 포식자 사진을 보여주거나 큰 소리로 극단적인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랬더니 헝겊 엄마와 함께 자란 원숭이는 공포의 상황이 발생하자 헝겊 엄마에게로 도망을 가서 진정될 때까지 붙어 있으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반면, 철사 엄마와 함께 자란 새끼 원숭이는 안절부절못하다가 이상 행동까지 보였다.

할로 교수는 이 실험을 우리의 뇌 발달과 연결시켰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고, 수정란은 다시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으로 성장하는데 외배엽이 신경계와 피부가 된다는 설명이다. 즉 마음을 관리하는 뇌와 피부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피부에 어떤 접촉을 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진다는 게 할로 교수의 주장이다.

원숭이가 ‘털 고르기’를 통해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듯 인간도 스킨십을 통해 타인과 유대를 맺는다. 적절한 스킨십이 결핍되면 사춘기 이후 자폐적인 성향이나 충동성, 공격성 등을 가져올 수도 있다.

고객이 매장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은 시각이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촉감이 발동된다. 문 손잡이와 메뉴판, 숟가락과 젓가락, 컵 등을 잡았을 때의 느낌 등 모든 것이 고객의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

인테리어가 좋다고, 물건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니다. 촉감의 디테일이 필요하다. 고객은 좋은 물건을 구매하러 왔지만, 그 안에서 힐링도 받고 싶어한다는 걸 잊지 말라.

촉감은 인간의 본능을 깨우며 잠자고 있는 예술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왕가위의 영화 ‘에로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여자 몸도 모르면서 어떻게 여자 옷을 만들겠어? 앞으로 이 감촉이 영감이 되어줄 거야.”

사람은 죽을 때까지 타인과 접촉하고 느껴야 하는 존재다. 실제로 배우자와 이혼을 했거나 사별 후에 남겨진 사람이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높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의학자들은 ‘촉감’이 천연 진통제라고 말한다. 남성은 아내가 사망한 후 6개월 정도 뒤에, 여성은 남편이 사망한 후 2~3년 사이에 사망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쩌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필요한 조건이 바로 촉감, 즉 만지고 만져진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접촉 위안’이 곧 접촉마케팅의 시작인 것이다.

아이엠 대표 (계명문화대 패션마케팅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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