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플라워 쇼’ (비비엔느 드 커시·2016·아일랜드)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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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1   |  발행일 2019-11-01 제42면   |  수정 2020-09-08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깨운 가든 디자이너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플라워 쇼’ (비비엔느 드 커시·2016·아일랜드)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플라워 쇼’ (비비엔느 드 커시·2016·아일랜드)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의 작은 화분들을 본다. 꽃과 풀들은 매일 조금씩 달라져 있다. 생명이 있어서다. 매일 들여다보고 살펴서인지 식물들은 저마다의 빛깔을 싱싱하게 뿜어내고 있다. 식물이 주는 기쁨이 참 크다. 자연만큼 커다란 휴식과 위안을 주는 것도 드문 것 같다. ‘플라워 쇼’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가든 디자이너 메리 레이놀즈는 유명 디자이너의 조수로 들어가지만, 자신의 디자인만 도용당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막막한 와중에 ‘첼시 플라워 쇼’에 나가는 꿈을 꾸고, 도전하게 된다. ‘첼시 플라워 쇼’는 영국 왕립 원예협회에서 주관하는 최고 권위의 정원 박람회다. 무명의 가든 디자이너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모험이지만, 메리는 하나하나 문제를 풀어나간다. 메리를 돕는 식물학자 크리스티와의 갈등과 로맨스도 주요 내용이다. 메리는 플라워 쇼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자연 보호를 일깨우자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티는 아프리카에 나무를 심어 사막화를 막는 일이 더 급하다고 말한다. 에티오피아까지 와서 자신을 설득하는 메리의 용기와 열정을 본 크리스티는 그녀를 도와 플라워 쇼에 참여한다.

이 영화는 ‘첼시 플라워 쇼’ 최연소 우승자인 메리 레이놀즈의 자서전 ‘데어 투 비 와일드(Dare to be Wild)’를 토대로 만들었다. 변호사 출신인 비비엔느 드 커시 감독은 자신의 정원을 꾸미기 위해 메리 레이놀즈를 만나고 나서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첼시 플라워 쇼’에서 메리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작품은 ‘켈트족의 성소(Celtic Sanctuary)’였다. 켈트족의 흔적이 남아있는 자신의 뿌리, 바로 아일랜드의 야생 자연을 나타낸 것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뛰놀던 야생 정원을 표현함으로써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이 디자인을 실제로 나타내기 위해서 500여종의 야생화가 필요했다고 한다. 메리가 가장 좋아하는, 200년 된 산사나무는 심사 직전에 꽃을 피워 보는 이들의 환호성을 지르게 했다.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자연 보호를 일깨우는 그녀의 정신이 최연소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했고, 최고의 가든 디자이너로 발돋움하게 했다.

흥미로운 건 우리나라에도 ‘첼시 플라워 쇼’ 우승자가 있다는 것이다. 2011년과 2012년 연거푸 금메달을 거머쥔 황지해 디자이너다. 출품작은 ‘해우소 : 근심을 털어버리는 곳’(2011)과 ‘고요한 시간 : DMZ 금지된 정원’(2012)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알림과 동시에 평화의 소중함을 각성케 함으로써 당당하게 우승한 것이었다.

영화의 엔딩 자막은 이렇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멀리 여행하는 대신 가까이 있는 정원을 아름답게 꾸밈으로써, 자연의 소중한 공간들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기 전에 각자의 방식으로 보전하려는 노력을 일깨울 수 있다.” 바로 ‘첼시 플라워 쇼’ 지원서에 썼던 메리의 글이다. 그녀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정원을 세상에 선보이며, 자연 보호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영화는 이런 메리의 열정과 용기를 아름다운 화면 속에 담아낸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것이다. 좌절에 빠져있던 메리는 ‘첼시 플라워 쇼’에 나가는 꿈을 꾸고 나서 쪽지에 이렇게 쓴다. “첼시 플라워 쇼 정원 디자인 부문 금메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힘들 때면 쪽지를 꺼내 소리 내어 읽으며, 헤쳐 나갈 방법을 찾는다. 바라건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다면, 그렇게 될 줄 믿고 최선을 다하기를.

그녀는 자신의 책 ‘생명의 정원’에서 이렇게 썼다. “눈을 채우는 풍경이 마음도 채운다(What fills the eye fills the heart)”라고. 세상이 험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그렇게 마음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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