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감독 - ⑦ 봉준호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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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1   |  발행일 2019-11-01 제43면   |  수정 2020-09-08
규칙의 틈바구니에 담아낸 사회 현실 문제…“이상한 장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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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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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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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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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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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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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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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대구에서 태어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다. 봉준호의 아버지는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을 지낸 국내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봉상균이다. 봉준호가 태어나던 1969년 당시 봉상균은 효성여대(현재 대구가톨릭대) 생활미술학과 창설멤버로 근무하고 있었다. 봉준호의 가계를 조금 더 살펴보면 어머니는 유명한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둘째 딸 박소영이고, 형인 봉준수는 서울대 영문과 교수에 누나인 봉지희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연성대 패션스타일리스트과 교수이며, 아내는 시나리오 작가 정선영에 아들인 봉효민 역시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어린 봉준호가 살던 곳은 대구 대명동으로 집 서재 겸 화실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었다. 아버지는 클래식, 특히 성가곡을 좋아하셔서 항상 음악이 흘러나왔다. 외국에 다녀오실 때마다 항상 디자인이 신기하고 예쁜 물건을 사다주셔서 문화적 충격을 받곤 했다. 미국과 일본의 영화잡지도 많이 보셨는데, 준호는 어릴 적부터 그 책들을 끼고 살았다.”(봉지희)

이후 봉준호는 가족을 따라 서울 잠실로 올라가 그곳에서 영화감독을 꿈꾸며 청소년기를 보내다 대학에 입학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해 학내에 ‘노란문’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든 그는 16㎜ 필름으로 ‘백색인’(1993)이라는 첫 단편영화를 연출한다.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11기로 들어가 ‘프레임 속의 기억들’이나 ‘지리멸렬’(1994) 같은 단편들을 만든다. 아카데미를 마친 봉준호는 1999년까지 충무로에서 조연출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이력을 쌓아간다. 그러다 우노필름(싸이더스의 전신) 차승재 대표의 눈에 띈 그는 31세의 나이로 첫 장편영화 연출의 기회를 얻게 된다.


대구에서 태어나 유년기
20代 단편·시나리오 이력
31세에 첫 장편 연출 기회
블랙코미디‘플란다스의 개’
국내보다 해외호평 이어져

33년만에 진범 특정 화제
치밀한 연출‘살인의 추억’
美 독극물 한강방류 모티브
괴수물·유머 접목한 ‘괴물’
엄마의 사투 그린 ‘마더’

글로벌 프로젝트‘설국열차’
국내영화 최대제작비‘옥자’
칸 황금종려상 수상‘기생충’
韓영화 100주년 최고 선물



배우 배두나의 첫 주연작이기도 한 ‘플란다스의 개’(2000)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소음을 일으키는 반려견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소동극으로 풀었다. 대중적으로는 실패하나 이후 여러 국제영화제를 경유하면서 극진한 보상을 받았다. 초청 받았던 영화제만 해도 산 세바스찬영화제, 토리노영화제, 시애틀영화제, 더블린영화제, 로테르담영화제, 팜스프링스영화제, 부에노스아이레스영화제 등 다수에 이르며 블랙코미디의 재기발랄함뿐만 아니라 현실반영적인 이야기가 외국 관객들을 매료시키면서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대중의 외면을 받은 데뷔작을 만든 신인감독은 의기소침했으나 그의 재능을 믿었던 제작자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어 차기작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살인의 추억’(2003)은 1996년 초연된 이래로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받으며 연극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해오다 최근 33년 만에 진범이 특정되면서 다시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추리극 ‘날 보러와요’(김광림 작·연출)를 원작으로 심성보 감독과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데뷔작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 봉준호는 치밀하고 꼼꼼하게 차기작을 준비해 525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고 그해 국내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한다.

‘괴물’(2006)은 2000년 2월9일 서울 용산 미8군 기지 영안실에서 군무원이 독성을 가진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무단으로 한강에 방류한 맥팔랜드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웅담을 답습하는 대신, 한국적 상황과 인물들의 고군분투를 따라가며 전작들이 갖고 있던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도 괴수물의 장르적 장점을 현실과 접목시키는데 성공한다. 무능한 공권력으로 드러나는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한국의 현실을 스크린에 담아내며 영화의 규모에 걸맞은 드라마와 볼거리의 조합에서 당시 충무로가 현실적으로 해낼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까운 결과물을 보여줬다.

‘마더’(2009)는 전작으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한 전범을 보여준 봉준호가 소품으로 돌아와 한국의 현실이 드라마의 뒤편에서 이야기를 깊게 만드는 ‘살인의 추억’이나 괴수 장르의 스케일이 있었던 ‘괴물’과 달리 오직 ‘엄마’와 그이의 진심 어린 ‘사투’를 그렸다. 사건 자체의 드라마틱함보다는 극단으로 몰린 ‘엄마’의 심리와 행동에 방점을 찍어 외형적인 스케일보다 내면의 스펙터클에 주목하고 ‘엄마의 사투’를 끝까지 몰아가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관객을 끝내 동참시키고 만다.

‘설국열차’(2013)는 봉준호의 첫 글로벌 프로젝트로 프랑스 만화 원작에서 세계관을 가져와 기상이변으로 인류에게 닥친 새로운 빙하기에 생존 인류 전원을 태운 채 설원을 뚫고 질주하는 새로운 노아의 방주 안에서 펼쳐지는 숨가쁜 반란의 드라마로, 봉준호의 의도처럼 ‘기차라는 영화적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담아낸다.

‘옥자’(2017)는 세계 최대 콘텐츠 스트리밍 기업인 넷플릭스와 봉준호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어난 거대한 동물 옥자와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자란 소녀 미자의 우정과 모험을 그렸다. 한국 영화감독이 만든 작품 가운데 최고의 제작비(5천만달러)가 들었다. 그러면서 봉준호는 영화에 대한 흥행 부담 없이 완벽한 창작의 자유를 누리기도 했다고.

‘기생충’(2019)은 한국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한국영화 100주년에 받은 최고의 찬사다.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 가족희비극은 국내에서 1천만명이 넘는 관객들을 동원하면서 전세계에서 1억달러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였다.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도 올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5월22일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열린 ‘기생충’ 공식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장르영화 감독”이라고 소개하면서도 “장르영화를 만드는데 규칙을 잘 따르지 않고 규칙의 틈바구니에 사회 현실 문제를 담아낸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이 이상한 장르감독이 앞으로 어디까지 나아가 어떤 세계를 만들어 또 관객들을 놀라게 할지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늘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을 궁금하게 만드는 감독이라니.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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