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모범상에 대한 예의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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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4 07:42  |  수정 2020-09-09 14:07  |  발행일 2019-11-04 제15면
[행복한 교육] 모범상에 대한 예의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교내 모범상 수상자가 각반 1명씩, 30명 선정되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모범이라는 말은 원래 무엇을 똑같이 만들어 내는 틀을 가리키는 말로, 나무로 만든 틀은 ‘모(模)’라 하고 대나무로 만든 틀은 ‘범(範)’이라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본받을 수 있는 본보기가 되는 언행’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이번에 우리학교 다양한 연령층의 담임교사가 작성한 공적조서에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배려와 친절이었다. 봉사, 책임감, 리더십, 학습태도, 성실, 선행과 같은 단어도 많았지만 모범상의 최고의 덕목은 단연 ‘친절’이었다.

담임교사가 작성한 내용을 찬찬히 읽고 나니, 꼭 만나고 싶은 학생이 있었다. 어떤 학생이기에 자신도 타인도 잘 인정하지 않는 사춘기에, 급우들에게 존경을 받을 정도인지, 됨됨이가 남다른지 무척 궁금했다. 공교롭게도 네 명 모두 3학년 남학생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눈맞춤하며 공손한 태도로 앉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질문과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말이 빠르지 않고 표정이 온화했다. 네 명의 가장 큰 공통점은 오랜 시간 수행한(?) 차분함이었다. 친절하다는 것은 다정하고 부드러우며 정성을 다하는 태도이다. 아마도 분별력 있는 포용력에서 비롯되는 행동과 언어가 또래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처지를 살펴 돕는다는 것은 그 나이의 남자아이가 갖추기 힘든 품성이다. 여러 친구, 부모님, 형제를 배려하다보면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뒷전인 경우가 많지 않느냐고 하니 서로 격하게 공감했다. 스스로를 챙겨가며 배려하라고 하자, 참하고 예쁜 여자가 나타나면 양보하지 않고 용기를 내겠다고 말해 함께 웃었다.

요즘 한창 진행중인 교원능력개발평가의 교사 문항을 보아도 일반교사든, 담임교사든 그 생활지도 부문에 ‘선생님은 타인을 배려하는 생활태도를 갖도록 지도합니다’라는 문항이 거의 들어간다. 이건 교육해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사실 배려를 잘한다는 것은 다양한 상황과 때와 대상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것이 아니다. 마음먹고 친절을 베풀었다가 오지랖이 넓다든지, 아니 한만 못하다며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 상황에서 왜 나서느냐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손해를 볼 때도 많다. 선배가 후배에게 베푼 친절이 꼰대짓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려는 우선, 관계를 자연스럽고 유려하게 맺는 것이 먼저다. 자신을 잃지 않고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위한 메타(진정으로 위하는 방법)를 키워야 한다. 그러니 이게 어찌 쉬운 일인가. 예의를 갖추는 정도도 쉽지 않은데….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오래전 학창시절의 ‘모범상’에 대해 물어 봤더니 성적순으로 주더라, 실장, 부실장 등 간부 서열순으로 주더라, 엄마 치맛바람이 센 아이에게 주더라, 아버지가 육성회 임원이라서 주는 것 같더라 등 부정적 기억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일부에서는 모범상 같은 건 없애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뭐든지 자신에게 현실적인 이득이 되는지 여부를 따지고 행동하는 시대에 모범상은 더 의미가 크다. 공동체 안에서 주변을 헤아려 어려운 상황에서 솔선하여 봉사하고, 주변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학교에서조차 이러한 가치를 소중히 가르치고 격려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교육할 것인가.

모범학생 수상자와 대화하는데, 창밖 복도가 소란스럽다. 이들 친구를 따라온 학생들이었다.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보기 좋다고 했더니 쑥스러워 한다. 훈훈하다. 그 친구에 그 친구들이다. 그러다 모두에게 중·고교시절에 가장 받고 싶은 상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목소리로 외친다. ‘학업성적 최우수상’요!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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