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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광장] 온통 입만 살아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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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08

전지현 변호사
몇 년 전만 해도 기껏해야 문자가 다였으니 말을 전하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보급의 일반화를 기점으로 세상은 많이 달라져서 말을 하는 것도, 말이 퍼지는 것도 쉬워졌다. 굳이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골방에 틀어박혀 손가락만 움직이면 수만의 사람들에게 나의 말을 전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말의 진실성이 단지 소음의 크기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다수가 그렇게 얘기하면 진실이 되어 있곤 한다. 누군가 귀를 열고 있으면 좋으련만 다들 귀는 반만 열고 입만 잔뜩 벌리고들 있다. 각종 SNS에, 다양한 방송까지 포화상태다.

그런데 세상에는 늘 이런 왜곡된 현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주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유래라는, 과거 백성을 기망했던 명나라 불교 승 같은 권력자들과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추종자들이다. 말이 쉬운 세상에서 기망은 아주 쉽다. 모두들 말하고 있으면 어느새 진실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으면 가차 없이 도려내면 된다. 전광석화처럼 떼로 달려들어 신상을 파고 인신공격을 하여 만신창이로 만들면서 피해자가 받는 상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진실이 드러나면 또 다른 진실을 만들고 대결 구도를 만들면 된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면서 죽는다는 말이 퍼졌을 때, 그때는 그게 진실이었다. 용기를 내어 아니라고 하면 비난이 쏟아졌다. 시간이 흘러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이 1위를 기록하는데, 그 때 그 말이 잘못됐다고 사죄하는 사람은 없다. 그로부터 6년이 흘러 세월호가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침몰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세월호 유족과 침몰의 주체로 지목된 사람들은 상처를 입었다. 이후 선체조사위의 아니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역시 사죄는 없다. 모두가 입만 열고 귀는 반만 열어놓았던 결과다.

몇 년에 한 번 찾아오던 무서운 말들이 이제는 타이밍에 맞춰 동시다발적으로 나온다. 한 쪽에서 무슨 대단한 비리라도 잡은 듯이 검찰이 자신들의 수장을 위해 지저분한 접대 의혹을 묻은 것처럼 보도하더니 어느 궤변가는 그 수장이 신성한 개혁의 선봉자를 표적 수사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다행히 진실이 아닌 걸로 매듭이 지어졌지만 이건 상대를 잘못 골라서이다. 만일 검찰총장이 아닌 누군가를 향한 말이었다면, 또 그 누구는 상처를 받고 진실은 묻혔을 것이다.

양심선언이란 내면의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을 때 나오는 용기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 많아지면서 양심선언도 잦다. 물론 그 중에는 얼마 전 캐나다로 가버린 ‘13번째 증인’이라는 여성 같은 양심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실한 양심도 있다. 다만 누군가의 경험이란 것은 어느 기간 어느 부분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일탈에 대한 분노가 개혁의 당위성으로 연결되어서도 안 된다. 감성적 접근과 비약은 또 한 번 프레임의 덫에 걸릴 수가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우리 헌법 제10조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조항이 있고, 제21조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조항이 있다. 사람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말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마치 말을 해야 인격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인격은 경청과 상식에서 나오는 것이거늘 너도 나도 인격자가 되어 떠들어대는 통에 세상이 온통 소음으로 가득 차있다. 고막이 터질 것 같다.

이쯤 되면 소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말 같은 말과 말 같지 않은 말을 좀 구분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구분하냐고 묻는다면, 진심으로 귀를 열라고 얘기하고 싶다. 소음의 크기 조절도 듣는 사람의 몫이다. 일단 다 듣고 나면 그 다음은 자연스레 합리적 상식이라는 보편타당한 법칙에 따른 판단이 따르게 된다. 표현의 자유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작게는 우리의 정신 건강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크게는 대한민국 헌법에 표현의 자유가 규정된 취지를 살렸으면 좋겠다. 무분별한 프레임 전쟁에 경종을 울렸으면 좋겠다.전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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