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꿈에 그리던 집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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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8   |  발행일 2019-11-08 제40면   |  수정 2020-09-08
“자던 잠에 고이 가게 해주세요” 새로운 집 향해 노래한 할머니의 꿈
[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꿈에 그리던 집
[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꿈에 그리던 집

며칠 전의 일이다. 한 작가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아낀다. 고백하건대 질문할 때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밋밋해진 분위기 쇄신에는 그만이기에 생뚱맞지만 더러 하는 질문이다. 이때 ‘꿈’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국어사전은 ‘꿈’의 의미를 이렇게 나열한다. 하나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고 다른 하나는 ‘실현될 가능성이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이다. 첫 번째가 긍정적인 의미라면 두 번째는 부정적 의미가 크다. 여기서의 ‘꿈’은 첫 번째 의미에 해당된다. 일종의 장래희망 같은 것이다.

‘꿈’은 사람을 이해할 만한 단서가 된다. 대화나 인터뷰할 때 가끔 건드리는 이유이다. 꿈을 물으면 어른들은 대체로 새삼스럽다는 반응이다. 꿈을 풀어놓을 때의 표정도 다양하다. 진솔하면 짓는 표정도 진지하다. 아이들의 대답은 어른들의 기준 밖이다. 순수할수록 참신하고 기발하다. 세상의 기준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대답은 보편적이다. 신기하게도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꿈과 직업을 동일선상에 둔다는 점이다.

‘자라나는 꿈나무’라는 말은 낯익은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성숙한 어른보다는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용례이다. 꿈 앞에 ‘자라다’라는 말을 붙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여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했거나 부와 명예 등을 축적한 성인들에게는 이러한 기준의 질문이 무의미하다. 잘못하면 결례가 되고 유치하다는 핀잔세례까지 받을 수 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작가에게 “꿈이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미소로 답을 대신한다. 내성적인 그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도 성인들의 공통된 반응일 것이다. ‘꿈’이 어른들에게는 과거형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질문을 던진 후 작가의 얼굴에 드리워진 복합적인 감정을 읽던 찰나에 그가 대뜸 반격을 한다. “그럼 선생님의 꿈은 뭡니까?” ‘대략 난감’은 이런 경우에 하는 말이지 싶다. 웃음과 진지함이 버무려진 비빔밥 같은 대화를 나눈 것은 순전히 그의 반격 덕분이다.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꾼다. ‘꿈’은 입에 올리기만 해도 경직됐던 마음이 이완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찌푸렸던 미간에 파인 주름이 펴지고 눈 속에 천진난만한 동심이 고이게 만든다. 깊은 사색에 잠기게도 한다. 바로 ‘꿈’의 위력이다. 꿈은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 며칠 전에 목격한 할머니의 꿈이 그랬다.

이젠 고인이 되었지만 할머니는 생전에 자주 꿈을 꾸었다. 97세가 되자 꿈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들릴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처럼 매일 노래한 꿈은 소박했다. 내용인 즉 ‘죽을 때 자던 잠에 고이 가게 해 주세요’였다. 할머니의 그 꿈은 새로운 집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집은 다름 아닌 고인의 무덤이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더니, 할머니는 침상에서 영면에 들었다. 새벽녘에 잠시 숨을 몰아쉬다가 고요히 삶의 경계를 넘어갔다. 고인의 육신 위에 내려앉은 평화를 온 가족이 함께 지켜본 시각은 오전 4시35분. 평소의 성정으로 보아 고이 가게 해 달라던 할머니의 바람 속에는 당신의 안위보다 남겨질 후손들에 대한 배려가 스며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죽음을 삶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확고해지면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어요. 거부하려 들면 갈등이 생기고 불편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는데,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편안해집니다. (중략) 우주의 질서처럼, 늙거나 죽는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죽음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육신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소유물이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히 눈을 못 감는 것이지요.” 편안하게 잠든 할머니 주검 앞에서 법정스님이 하신 이 말씀이 떠올랐다.

골골마다 단풍 잔치다. 몇 잎은 고단한지 일찌감치 땅 위에 몸을 뉜다. 떨어지면서도 색을 내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단풍잎에 할머니의 주검이 포개어진다. 최고의 독서는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이라고 한 어느 학자의 말을 상기하며 웰 다잉에는 웰빙이 전제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요 며칠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낸 나는, 작가가 “선생님의 꿈은 뭡니까” 하고 물었을 때 감히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잘 죽는 것입니다.” 꿈에 그리던 집에 고이 잠든 할머니를 보고 한 대답이다. 가슴에서는 쉬지 않고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파문을 일으킨다.

화가·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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