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달나라 내 집 마련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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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1 08:15  |  수정 2020-09-09 14:46  |  발행일 2019-11-11 제22면
[문화산책] 달나라 내 집 마련
김영준

우우웅, 우우웅. 휴대폰 진동소리에 K는 잠을 깼다. 새벽 6시. 오늘도 옆방 공시생이 맞춰둔 알람 소리에 K도 덩달아 강제 기상을 했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 25만원. 새로 지은 고시텔이라 나름 시설은 깨끗한데 방음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3평 남짓한 공간에 수납식 서랍이 밑에 있는 침대와 옷장이 한 쪽 벽면에 있고 반대편에는 책상과 미니 냉장고, 개수대와 전기쿡탑이 있다. 좁긴 하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이 정도도 못 견딘다면 장차 ISS(국제우주정거장)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ISS의 내부 면적은 보잉 747 여객기와 거의 같다지만 온갖 장치들로 채워져 있어서 실제로는 그 절반도 안 된다. 게다가 우주 정거장의 화장실을 생각해보라. 큰 호스에 엉덩이를 대고 볼 일을 본 후 버튼을 눌러서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야만 하지 않는가. 그에 비하면 0.7평짜리 욕실은 호텔이나 다름없다. 샤워를 하다 몇 번이나 벽과 세면대에 부딪혔지만 K의 입에서는 연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에게는 ‘내 집 마련’이라는 장밋빛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1천224평! 그것도 달나라에. ‘달토지 증서: E-5지역, 구역번호 420/0450’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루나엠버시’라는 미국 회사도 가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벌써 전 세계적으로 600만명이 넘는 사람이 달 토지를 분양받았다고 한다. 톰 크루즈, 트럼프 대통령도 샀고 강다니엘은 팬들에게서 선물로 받았다는데 믿어야지, 암.

1980년 데니스 호프는 샌프란시스코 지방 정부에 달표면을 포함한 태양계의 8개 행성과 그 주위를 도는 위성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문서를 제출했다. 물론 지구와 태양은 빼고. 5시간의 심리 끝에 감독관은 그 소유권을 인정했다. 근거는 이렇다. 1967년 UN이 정한 외계 우주조약에는 ‘어떠한 국가도 외계행성에 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데니스 호프는 그 문구의 허점을 뚫은 것이다. 국가는 못하지만 개인도 안된다는 내용은 없지 않은가. 그 후 그는 루나엠버시라는 기업을 설립하고 달의 땅을 쪼개서 1에이커(1천224평)에 세금과 수수료 포함 19.99달러(약 3만5천원)를 받고 팔기 시작했다. 아이디어가 재미있어서 또는 연인에게 낭만적인 선물로 안성맞춤이어서 그리고 비싸지 않은 덕분에 지금까지 약 611만 에이커가 팔렸다고 한다.

“차라리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실현 가능성이 1%라도 되냐?” 친구가 K에게 쏘아붙였다. 실현 가능성이라…월수 200만원 중 절반을 꼬박 저축을 해도 수성구의 30평 아파트 한 채 사려면 60년이 걸리는데 이것보다는 달나라에 내 집 마련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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