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미란다와 해밀턴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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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2 07:39  |  수정 2020-09-09 14:45  |  발행일 2019-11-12 제23면
[문화산책] 미란다와 해밀턴
이응규

지금 이 시간에도 주옥같은 뮤지컬들이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 미국 건국의 주역이자 미화 10달러의 주인공이기도 한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다룬 전기 뮤지컬 ‘해밀턴(Hamilton)’과 창작자인 린 마누엘 미란다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지금도 신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2015년 겨울,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던 해밀턴은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승승장구를 예감한 듯 보였다. 티켓을 구하기 어려워 일찌감치 뉴욕 공연 관람을 포기했던 나는, 최근 런던까지 쫓아가 마침내 이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왜 이 뮤지컬이 ‘이 시대 뮤지컬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철저히 브로드웨이 정통 뮤지컬 문법을 지키면서 놀라울 만큼 스피디하고 트렌디하며, 조밀하게 짜인 플롯과 캐릭터를 R&B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으로 표현하고, 심플하지만 정교한 무대장치와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조명이 배우의 움직임과 비트의 속도에 맞춰 비춰대는 변화무쌍한 디자인은 가히 ‘문화충격’이라 할 만큼 놀라웠다.

창작자 미란다는 최근 국가 예술 훈장인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수상했고 ‘맥아더 펠로십’에 선정돼 5년동안 매년 1억1천만원의 상금을 받는 영예를 얻게 됐다. 한 사람이 한 작품을 기획하고 직접 극본, 작사, 작곡, 연기까지 한 그는, 그의 영웅이었던 뮤지컬 작곡가 조나단 라슨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성장해 감을 알 수 있다. 20대에 쓴 뮤지컬 ‘인 더 하이츠’는 대학 공연을 시작으로 브로드웨이까지 가게 되는 출세작이 됐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품을 만들었던 라슨과 달리 미란다는 칼럼니스트, 고교 영어교사 및 TV 등의 매체에서 조연으로 활동하며 7~8년동안 뮤지컬 해밀턴을 써왔다. 하늘에서 그를 지켜보는 라슨의 부러운 마음을 눈치챈 걸까? 미란다는 뮤지컬 ‘틱틱붐’의 영화 감독이 돼 라슨의 자서전 뮤지컬을 영화화하는데 중심적 인물이 된다.

10달러짜리 지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던 해밀턴 초상을 지폐에 남을 수 있게 한 주역이 될 정도로 한 나라의 정책을 바꾼 매개체가 되기도 했던 전기 뮤지컬 ‘해밀턴’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의뢰받아 지원금으로 제작되는 일회성 뮤지컬이 아닌, 한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그는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해밀턴과 연애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6~7년을 만들었다. 세상엔 뮤지컬로 만들 전기가 차고 넘치지만 누군가에 의한 부담과 숙제라고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절대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과 수년을 연애했다던 미란다가 만든 해밀턴. 뉴욕이나 런던으로 여행을 간다면 꼭 한번 그와 데이트해보시라. 마치 예수님처럼 죽어있던 당신의 세포들이 인터미션 포함 2시간45분 만에 부활할지도 모른다.이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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