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끔찍한, 그러나 모두 무관심한 인적 재난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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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2   |  발행일 2019-11-12 제29면   |  수정 2020-09-08
[기고] 끔찍한, 그러나 모두 무관심한 인적 재난

대구에서 120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일이 뒤따를까. 우선 대구시 전체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시장은 모든 일정을 중단한 채 현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평소에는 지방도시에 무관심한 서울의 모든 방송과 신문, 온갖 인터넷매체까지 벌떼처럼 대구로 몰려들 것이다. 졸지에 대구가 CNN과 BBC에 소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상황을 약간 바꿔보자. 120명 사망은 같은데 ‘한꺼번에’가 아니라 3일에 한명씩 죽었다고 말이다. 그러면 아무 일도 없다. 시장은 알지도 못하고, CNN·BBC는커녕 지역신문의 1단 기사도 안 된다. 시민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는 듯 무심할 것이다.

바로 교통사고 얘기다. 2018년 한 해 대구에서는 1만3천건이 넘는 교통사고로 120명이 숨졌다. 사망자도 가해자도 대부분 대구시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망자의 절반은 보행자였다. 사고를 낸 자동차와 아무 관계도 없이, 그냥 길을 걷다가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사고를 당했다. 이런 일이 거의 매일, 3일에 한번은 사망자까지 내면서 일어난다.

교통사고는 조금만 마음 쓰고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예방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성찰이 필요하다. 교통사고의 원인을 보면 절반 이상이 안전의무 불이행이고, 안전거리 미확보·신호위반·교차로통행방법 위반·중앙선 침범 등이다. 안전의무 불이행은 무리한 추월과 끼어들기·안전표지 무시·운전 중 전화통화·동승자와의 잡담·담배 피우고 음식 먹는 일 등이다. 이런 행위들은 운전자의 의도적 법규위반이나 습관적 부주의에 의한 것이다. 이 말은 운전자가 교통법규를 지키고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사고의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대구시는 교통사고와 사망자를 줄이기 위하여 ‘Vision330’이라는 정책을 2021년까지 시행한다. 목표달성을 위해 안전교육·각종 시설 개선·첨단 스마트교통체제 구축에 이르기까지 수십가지 사업을 발표한 바 있다. 투입되는 예산만도 1천100억원에 이른다.

사실 교통사고와 사망자를 줄이는 것이 반드시 엄청난 예산을 들여 시설을 첨단으로 바꾸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고를 정확히 분석하여 그에 대응하는 시책을 집중적으로.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길이다.

최근 대구경북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사망자의 절반이 65세 이상이고 10대 청소년이 그 다음이다. 사망자의 절반은 보행자인데 특히 횡단보도 보행자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시간대별로는 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이 야간에 발생했다. 그렇다면 타깃은 비교적 명확하다. 노인층과 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구성하되, 교통사고 전문인력을 투입하여 실질적 내용 중심으로 교육하는 일이다.

노인들이 야간외출을 줄이거나 옷차림에 유의하고 동행자를 동반하는 일, 학생들이 횡단보도 바깥쪽 차도로 진출입하지 않도록 하는 일 등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고방지에 매우 중요하다. 시설개선에서는 횡단보도와 이면도로에 조명시설을 확충하는 등 야간 보행공간 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다. 야간과 비올 때 특히 효과적인 횡단보도 경계선 점멸등 설치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예산이 필요한 곳은 이런 쪽이다. 첨단 스마트교통체제를 구축하는 것보다도 이런 일들이 먼저다. 운전자의 경우, 야간 운전 시와 횡단보도에서의 법규위반은 엄중하게 가중 처벌하고, 운전습관 개선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을 다양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불평과 반발에 구애받지 말고 이 모든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상용 (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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