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도루묵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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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3   |  발행일 2019-11-13 제30면   |  수정 2020-09-08
20191113
도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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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식전문가>

도루묵의 유래를 살펴보면 ‘홍길동’의 저자로 잘 알려진 허균이 광해군 시절 유배를 갔을 때 지은 음식평론집인 ‘도문대작’에 은어를 설명하기를 “동해에 나는 생선인데 처음 이름은 목어(木魚)였는데 전 왕조 시절에 이 생선 맛에 반한 임금이 이름을 은어라고 불러라 하다가 나중에 이 생선 맛에 싫증이 나자 다시 목어(木魚)라 불렀다”고 했다. 다시 목어라 하여 환목어(還木魚), 즉 도로목이 되었다. 전 왕조라 함은 고려 때 임금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많이 전해 내려오는 도루묵 얘기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북쪽으로 피란길을 떠날 때 배가 고파 수라상에 올라온 생선을 맛있게 먹은 후 생선의 이름을 물었다. ‘묵’이라는 생선이라 하자 이렇게 맛있는 생선의 이름이 아니라며 즉석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피란지에서 먹은 은어가 생각이 나서 다시 먹어 보니까 옛날에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형편없는 맛에 실망한 선조는 역정을 내면서 ‘도루묵’이라 불러라 하여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있듯이 배고플 때 먹던 음식 맛과 모든 것이 풍족하고 배 부를 때 먹는 음식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도루묵은 주로 강원도, 함경도, 경상도 북쪽 바다에서 주로 많이 잡히는 생선이다. 선조가 임진강을 건너 평양을 거쳐 의주쪽으로 피란을 갔으니 피란길에서 도루묵을 먹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본다. 도루묵 관련 어느 문헌에도 선조가 도루묵을 먹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도루묵이 함경도 사람들의 서글픈 처지를 대변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성계 장군을 도와 조선왕조를 건국하는 데 기여한 공로로 조선이 개국하자 목어가 은어로 변하듯이 우대받고 으스댔지만 1467년(세조13) 함경도 지방에서 발단된 ‘이시애의 난’ 이후 다시 변방 백성으로 차별과 멸시를 받게 되자 자신들의 신세를 빗대어 ‘말짱 도루묵’이라 하며 서글퍼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는 군대식사에 보급될 정도로 값이 싼 생선이었는데 일본에서 도루묵 알이 원폭 피해자에게 좋다는 소문이 퍼지자 일본에서는 없어서 못 파는 어물이 되었다. 이때부터 무분별한 남획으로 1990년대에는 1천t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어획량이 줄게 되었다. 2006년도부터 11㎝이하의 어린 도루묵의 포획을 금지하고 도루묵 인공산란장도 조성하는 등 자원회복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2009년부터는 어획량이 급격히 회복되어 2015년 12월에는 강원도 고성군 초도리 해변을 뒤덮을 정도로 도루묵 알이 밀려나오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루묵은 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적고 저칼로리 생선으로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한 건강식품이다. 통통하게 살 찐 도루묵 구이는 추운 겨울철 별미로 각광을 받고 있고 구이, 조림, 찌개, 도루묵 식해 등 다양한 요리가 있다. 도루묵 홍보와 소비촉진을 위해 강원도 양양과 속초에서는 매년 12월 도루묵 축제가 열린다.<전통음식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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