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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한식 현대화<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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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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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한식과 현대 조리법의 앙상블…세계가 놀란 ‘한국의 味’

전통을 오브제로 한 온갖 현대화된 음식들. 전통의 콘텐츠만 판박이로 깔아주면 시대와 공감을 못하게 된다. 전통은 기본이지만 기본에 갇히면 안된다. 이 전통의 에너지는 반드시 현재의 트렌드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해와 달처럼 빛과 그림자처럼 한쪽에는 전통, 또 한쪽에는 첨단의 콘텐츠가 앙상블을 이뤄야 절정의 창조력이 분출한다. 그게 한식 현대화의 화두라 할 수 있다.
한식의 과거와 미래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한식 관련 책 3권. 황광해의 ‘한식을 위한 변명’, 윤덕노의 ‘음식잡학사전’, 김상보의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왼쪽에서 부터)
전통과 첨단. 이 둘은 좀처럼 뭉쳐지지가 않는다. 전통을 너무 강조하면 첨단이 옹색해지고, 첨단만 분출되면 전통은 낡은 것으로 멸종되고 만다. 판소리도 광복 직후부터 대중가요에 밀려 고사 직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6·25전쟁 중 국립국악원 개원을 지시했고 이를 통해 국악 보존의 기틀이 마련되게 된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사당패였던 김덕수는 국악세계화의 원대한 포부를 품는다. ‘사물놀이’를 통해 전대미문의 퓨전국악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전통을 오브제로 한 온갖 행사도 마찬가지. 전통의 콘텐츠만 판박이로 깔아주면 시대와 공감을 못하게 된다. 전통은 기본이지만 기본에 갇히면 안된다. 이 전통의 에너지는 반드시 현재의 트렌드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해와 달처럼 빛과 그림자처럼 한쪽에는 전통, 또 한쪽에는 첨단의 콘텐츠가 앙상블을 이뤄야 절정의 창조력이 분출한다. 그게 궁극의 문화관광상품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럽의 숱한 옛 골목·고성·성당. 그게 끝이라면 ‘문화의 유럽’이 불가능했다. 옆에는 AI(인공지능), 클럽이나 페스티벌 같은 파티 공간에서 쓰이는 전자음악들을 통칭하는 EDM(Electronic Dance Music)에다 현대 감각의 레스토랑이 손을 맞잡는다. 티파니, 스와로브스키 등과 같은 세계적 세공술을 가진 가성비 좋은 아트상품이 에워싸면 전통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게 선순환을 하면 문화선진국이 된다.

서울도 나름 감각을 흉내내는 단계에 도달했다. 경복궁을 축으로 한 서울 원도심 내 4대 도성이 하나로 뭉쳐지게 만들었다. 각 포인트별 디자이너를 배치하고 그것에 걸맞은 재밌는 골목인프라를 도색했다. 한복을 입으면 무료로 고궁에 들어가게 했다.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걸 벤치마킹 한 전주한옥마을이 대박났다. 언제나 천편일률적이던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포석정. 다들 질려했다. 그걸 파고든 게 ‘황리단길 특수’였다.

2000년을 기점으로 한국에 먹방·쿡방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한다. VJ(비디오자키)가 급부상하게 된다. 20여년째 음식 프로그램이 TV 브라운관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그 중간에 새로운 명사가 등장한다. ‘먹거리 X파일’로 유명한 이영돈 PD, ‘미각의 제국’이란 책으로 유명해진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혼밥과 가정식 백반, 편의점 도시락과 골목식당문화의 신지평을 연 백종원. 이들이 한국 식문화의 근간을 미래지향적으로 점핑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 과정에 두바이 버즈 알 아랍 호텔의 부주방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에드워드 권을 비롯해 ‘리스토란테 에오’의 어윤권, 최현석, 박찬일,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 등이 유명연예인 못지 않은 셰프스타 시대를 연다.

프랜차이즈 광풍, 외식컨설턴트 범람, 지자체별 푸드스토리텔링마케팅 버전의 대표메뉴개발 붐이 쿵짝거리며 일어난다. 이 과정에 ‘우리음식연구회’라는 한식 연구 모임을 유도했던 농업기술센터가 앞장서 유기농을 앞세운 슬로푸드레스토랑의 상징이 되는 ‘농가맛집 특수’를 선도한다.

◆조선궁중요리 비판대에 오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절실히 요청된 전문가가 있다. 바로 특정 음식의 어원과 유래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한식 관련 고(古)조리서 연구가 및 식품사학자였다. 우리는 현장 전문가는 많은데, 어떤 흐름의 이면을 보여주는 원전(原典) 전문가는 희박하다. 그러니 중구난방이 될 수밖에 없다. 식품영양학자도 한식의 원형에 대한 멘트를 할 수 없다. 그냥 식품효능 정도만 언급하는데서 멈춘다.


산가요록 등 100여권의 정통 고조리서
대구출신 이성우씨가 처음 정리·체계화

한식 原典 수집·기행…본질 연구 작업
왕과 조선의 음식 일반화 오류도 지적

원형 유지 ‘한정식 풀코스 메뉴’전국화
원형의 변형통한 트렌드화 …양대 발전
내림음식 파고 들며‘종부 손맛’세계화



한국에는 산가요록 등 100여권의 정통 고조리서가 있다. 거의 조선시대 서적이다. 80년대들어 한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있었던 대구출신의 음식사학자인 이성우씨가 이들 서적을 최초로 체계화시킨다. 현재 한식 원전 연구가는 모두 그의 그늘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성우는 구름에 가려 있던 고려 이전의 한국음식사까지도 손을 댔다. 곰탕, 설렁탕 등 현재 주요 한식 연원도 거의 그의 손에서 정리됐다고 보면 된다. 그의 이론은 조선일보 대표 글쟁이였던 이규태에 의해 확대재생산 된다. 이 흐름은 윤숙경 안동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김상보 전 대전보건대 교수,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정혜경 호서대 교수 등으로 이어진다. 김상보의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도 조선의 음식이 어떤 건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윤 교수는 안동 등 경북 북부 반가의 내림음식은 물론 불천위제사음식 전문가다.

재야 고수도 등장한다. 원전을 품은 음식칼럼니스트다. 80년대 레이디경향 바캉스 부록 취재차 전국을 종횡무진했고 2015년 이후 두문불출하면서 한식 관련 자료 수집에 몰두하고 있는 음식칼럼니스트 황광해. 연세대 사학과 출신인 그는 서울의 해묵은 식당의 족보를 정리한데 이어 전국의 유명 식당의 흔적을 쫓아다녔다. 그의 행로는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아직까지 전국을 돌면서 음식기행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순경 음식칼럼니스트와 쌍벽을 이룰 정도다. 원전을 보고 궁금한 게 있으면 차를 몰고 현장으로 간다. 현재는 1년 일정으로 경북 요리의 본질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

황광해는 독설가다. 음식 관련 기사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놓는다. 그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각종 고조리서를 비롯한 다산 정약용 등 조선조 주요 작가들의 문집 등을 무섭게 파고든다. 그가 올해 펴낸 ‘한식에 대한 변명’(가람기획 간)은 문제작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정설화된 한식 관련 지식에 대해 일침을 가했기 때문이다. 가장 당혹한 쪽은 조선궁중요리 연구자들이다.

그는 궁중요리 일반화의 오류부터 지적한다. “왕의 밥상과 국가 조선의 음식을 혼동하면 안 된다. 왕의 일상적인 음식과 국가가 다른 국가에, 혹은 종묘 등 제사에 올리는 음식을 혼동하고 있다”면서 “김영삼 대통령의 칼국수는 대통령의 음식이다. 하지만 칼국수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아니다. 외국 수반들이 한국을 찾았다. 칼국수를 냈을까? 그러진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재차 “궁중의 음식은 허구다. 왕의 밥상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어 조선궁중요리의 대가로 알려진 한희순 상궁을 언론이 만들어 낸 허구라고 지적한다. “한희순이 고종과 순종,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의 밥상을 책임졌다는 건 엉터리 소설이다. 왕실의 식사는 남자, 숙수의 몫이었다. 한희순은 고종 시대엔 제대로 일을 할 연차도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 왕조의 끄트머리 몇 년 동안 일한 10대 궁녀의 기억에 너무 많은 이들이 휘둘린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한식의 과거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인데 제대로 된 한식 복원, 그리고 세계화가 되겠냐고 지적한다. 그는 “한식은 시쳇말로 폭망이다. 길을 잃었다. 음식 만드는 이들이 죄다 원본 없이 복사본을 그리고 있다. 한식, 한식의 정신도 모른 채 퓨전 한식만 그리고 있다”고 한숨을 내쉰다.

◆원전(原典)을 뒤지는 음식칼럼니스트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70대 중반인 그는 이성우 교수의 뒤를 이을 만한 한식 원형 연구가 중 한 명이랄 수 있다. 영천에서 예전 방식의 ‘국수방’을 찾아내는 등 현장과 원전을 비교해가면서 한식의 근원을 파고든다. 그는 진주냉면, 진주비빔밥, 진주헛제삿밥, 대구헛제삿밥, 하동참게가루장국 등을 복원한 바 있다. 20년 전 국내 최고 고조리서인 ‘산가요록’ 중 ‘진주면’에서 힌트를 얻어 닭살에 전분을 섞어 닥살냉면을 개발해 대구에서 처음 론칭하기도 했다.

전통요리연구가 진영도 양대 산맥으로 나눠진다. 조선궁중요리 인간문화재인 황혜성 사단과 윤숙자 전통음식연구소장 사단이다. 황 사단은 원형유지에 치중하고 윤 사단은 원형의 변형에 비상한 관심을 둔다. 황혜성의 세 딸(한복녀·한복선·한복진)의 지원사격을 받아 ‘궁중요리연구원’을 개원시켰고 한때 한식당 ‘지화자’를 통해 궁중요리 관련 한정식을 팔기도 했다. 이 흐름을 통해 한국형 한정식 풀코스 메뉴의 근간이 전국화된다. 90년대 이후 전국 유명 한정식 메뉴는 거의 이 연구원 출신 사장에 의해 만들어진다. 황 사단은 한발 더 나서 임금님 수랏상문화 전파에도 노력 중이다.

황 사단 제자로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을 주고 있는 요리연구가는 경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박미숙 <사>한국전통음식체험교육원 원장 겸 한식 전문 레스토랑 ‘수리뫼’(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용산서원 옆) 대표다. 그녀는 2003년부터 우리 음식과 음악의 공존을 꿈꾸고 있다. 고종의 조모인 조대비 팔순 잔치상을 진찬의궤에 의거해 전통적으로 재현해 내기도 했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의 남북정상회담 만찬 총기획자인 윤숙자는 팔도 내림음식의 연대기를 파고들면서 종부의 손맛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일조했다. 그녀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한식세계화 추진의 한 축이었다. 윤 사단 출신인 박순애 대구한의대 한방식품조리영양학부 교수. 그녀는 비빔밥의 원형이 ‘부빔밥’에서 왔음을 알려주는 상주의 대표적 고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를 모티브로 올해 처음으로 ‘시의전서 전국요리경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음식강산’(한길사 간)이란 한 권의 책으로 유명해진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도 원전과 현장을 중시한다. 국회도서관 검색망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신문, 잡지 등을 훑으면서 조선조 음식이 어떻게 현재에 이르게 됐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설렁탕에 대한 유래도 그가 가장 객관적으로 서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7년 ‘음식잡학사전’(북로드 간)으로 일명 ‘음식 어원 전문가’로 등장한 윤덕노 전 매일경제 베이징특파원. 그는 현장보다는 자료에 충실한다. 언뜻 ‘음식 서지학자’ 같다. 음식 관련 원전을 검색엔진 등을 통해 찾아내 그걸 자기 방식대로 편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후 ‘음식으로 읽는 한국생활사와 중국사’ ‘종횡무진 밥상견문록’ 등을 연이어 출간하며 한식의 족보 파악에 치중하고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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