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블랙머니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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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5   |  발행일 2019-11-15 제42면   |  수정 2019-11-15
희대의 금융사기극 진실을 밝혀라
20191115

자산가치 70조원 은행이 1조7천억원에 넘어갔다. 은행직원이 금감원에 보낸 의문의 팩스 5장에 말이다.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 1985’(2012) 등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조명해 온 정지영 감독이 이번에는 희대의 금융스캔들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 ‘블랙머니’는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1조3천800억원)에 인수해 2012년 하나금융에 매각하면서 4조6천억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남긴 론스타 사건을 다뤘다.

서울지검 내에서 ‘막프로’로 불리는 양민혁(조진웅)은 사건 앞에서는 물불 안 가리는 열혈 검사다. 그가 검사 인생의 치명적인 위기에 봉착했다.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피의자가 자살과 함께 동생에게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문자 메시지를 남긴 것.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상부의 지시도 무시한 채 단독으로 수사를 벌이던 양민혁은 피의자가 대한은행 헐값 매각사건의 중요 증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은행 매각하며 4조6천억 차익 남긴 론스타 사건
권력 상층부까지 깊이 관여 정황…실체 파헤쳐



본능적으로 촉이 발동한 양민혁. 피의자의 죽음이 단순 자살이 아님을 직감한 그는 이 사건이 금융감독원과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얽힌 거대한 금융 비리라고 생각해 그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대한은행을 인수한 미국 스타펀드 측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국제 통상 변호사 김나리(이하늬)를 만나게 된다. 김나리 역시 이상한 낌새가 감지되는 이 일에 권력 상층부까지 깊이 관여된 정황을 포착하고 양민혁과 함께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공조를 펼친다.

눈 뜨고 코 베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금산 분리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산업자본(기업)이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자본을 일정부분(시중은행 4%, 지방은행 15%)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막아놓고 있다. 하지만 산업자본인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지분율이 51%에 달한다. 권력의 상층부가 개입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영화는 이 점에 착안해 론스타 먹튀 사건을 토대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엮는다. 사건의 배후에 청와대와도 연결된 모피아(기획재정부+마피아)가 있고, 이들이 양민혁을 포함한 검찰에 압력을 넣어 수사를 방해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블랙머니’는 자칫 복잡하고 무거울 수 있는 사회 비리 고발 영화다. 하지만 경제를 잘 모르는 양민혁 검사를 내세워 관객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통적인 측면에서 이 장치는 주효했다. 어려운 경제 용어를 늘어놓는 대신 몸이 먼저 반응하는 양민혁의 막무가내식 활약에 이야기는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가고, 극적인 긴장감과 몰입도 역시 높아졌다. 정지영 감독의 사회성 짙은 이야기는 이번에도 통했다.(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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