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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諫言(간언)이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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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8

김수영 논설위원
신라때 충신 김후직은 “내가 죽거든 내 뼈를 임금의 사냥 나가는 길에 묻어다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의 배경은 이렇다. 김후직은 신라 지증왕의 증손이다. 그가 병부령으로 있을때 진평왕이 사냥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했다. 그러자 왕에게 사냥에 빠지지 말고 정사에 매진하라는 충언을 했다. 하지만 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후 김후직은 병석에 누워 이같이 유언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뼈를 임금이 사냥 다니는 길목에 묻었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가기 위해 말을 타고 가는데 어디선가 “가지마시오”하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이 이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지를 신하에게 묻자 신하는 소리가 나는 쪽에 김후직의 무덤이 있다 하고 그가 남긴 유언도 아뢰었다. 임금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고 이후 죽을 때까지 다시 사냥을 하지 않았다. 충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으나 충신이 죽은 후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광해군때 이항복은 간언(諫言)으로 인해 목숨까지 내놓은 충신이다. 정승 자리에 있으면서 강경대북파가 주도한 폐모론(廢母論)에 적극 반대하다가 유배돼 그곳에서 죽었다. 사후에 복관되고 청백리에 녹선됐다. 전제군주 아래에서 간언을 하고 유배나 사사(賜死)를 당한 이가 비단 이항복뿐이었을까.

조선의 통치방식은 전제군주제였다. 그렇다고 왕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렀던 것은 아니었다. 임금이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했을때 간언을 해 고치도록 했다. 간언을 담당하는 기관인 사간원까지 뒀다.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간쟁과 논박을 담당했다. 왕의 행동이나 통치방식을 비판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음으로써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가도록 했다.

조선시대에는 귀감이 될 간언을 뽑아 책을 펴낼 정도로 간언을 중시했다. ‘간언귀감(諫言龜鑑)’이라는 책이다. 상편에는 신하의 충간을 받아들인 왕의 선정을 기록하고, 하편에는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왕의 실정과 그 결과를 적었다. 충간을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로 빚어진 망국과 실정을 보여줌으로써 언로(言路)를 열고 간언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했다. 비판하는 쓴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고언이 곧 충언이기 때문에 쓰지만 달게 받아들여야 하나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쓴소리를 달게 받아들이는 이가 곧 지혜로운 성군이었다.

‘고마이간(叩馬而諫)’이라 했다. 말을 붙들고 간언한다는 뜻이다. 이는 충신의 간언을 의미한다. 사기 백이숙제열전편에 전하는 말이다.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려 떠날때, 신하가 임금을 시해할 수 없다며 말고삐를 붙잡고 불가함을 간한 고사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무왕은 끝내 은을 평정해 주의 천하를 이뤘다. 이에 천하가 주 왕실을 종주로 섬겼으나 백이와 숙제는 그 백성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배를 채웠다. 백이와 숙제를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며 절개있는 충신의 표상으로 삼는 것도 이때문이다.

과거 간언을 하는 배경에는 민심과 유교적인 덕(德)에 부합하느냐 부합하지 못하느냐가 자리했다. 불편부당하고 민심을 대변하는 것이 간언이다. 부당할 경우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는 게 간언이었다. 요즘 한국 정치판을 보면 간언(諫言)이 사라지고 간언(奸言)이 판을 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른 소리를 하는 정치인도 없고 그 소리를 소화할 지도자의 아량과 이해도 없다. 군주가 국정에 대한 간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간언을 하는 충신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암행어사로 잘 알려진 박문수는 영조때 충신이었다.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가 죽어 시호를 올릴 때 담당벼슬아치가 ‘곧은 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직간공(直諫公)이라 지어 올렸다. 영조는 이를 보고 ‘충성스럽고 곧은 사람’이라는 뜻의 충헌공(忠憲公)으로 고쳐줬다. 충신을 만드는 것 역시 군주의 몫이다. 역사 속 많은 군주들이 간언(奸言)에 혹해 간언(諫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정한 뒤 뒤늦게 후회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것이다.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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